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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고위성직자 부패 비밀문서 폭로<br>“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고 안심할까?”

김치중기자 | myhyewook@naver.com | 2012-05-29 (화) 16:39

부처님오신날이 ‘부처님우신날’ 같았던 5월 28일 국내 굴지의 신문 조선일보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로마 교황청의 막장 비리 기사가 게재된 것이다. 이 신문은 이날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수행비서로 일해 온 파올로 가브리엘레(46)의 폭로기사를 대서특필했다. 기사에 따르면, 교황청 일부 고위 성직자가 바티칸과 이탈리아 업체 간 여러 계약에서 저지른 부패 등에 대한 의혹을 담은 내부 비밀문서를 불법 소지 유출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교황 외부 행사 때 지근거리에서 교황을 수행하고 교황의 음식과 의복을 준비하는 최측근 중 한 사람. 교황청은 지난달 베네딕토 16세의 지시로 ‘추기경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내부문서 유출 경위 등을 조사했지만 이탈리아 언론들이 이들 문서의 내용을 잇달아 보도하면 사태가 커져버렸다.

현지에서는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빗대 '바티리크스(바티칸 문서 유출)'라는 말도 생겼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이탈리아 언론인인 잔루이지 누찌가 교황청에서 유출된 비밀문서와 편지 등을 근거로 교황청 내부의 권력투쟁과 부정 비리를 폭로한 ‘히즈 홀리니스(His Holiness)’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현재 출간 직후 이탈리아 주요 서점에서 판매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문제의 내부문서에는 바티칸 일부 고위 성직자들이 외부 업체와의 계약에서 가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자신들과 친밀한 관계인 업체에 주요 계약을 제공하고 이를 바티칸 은행이 '돈세탁'을 했다는 혐의 등이 기록돼 있다.

문서에는 또 일부 고위 성직자들은 이탈리아 TV 유명 토크쇼 진행자에게 교황 알현을 주선하고 1만유로(약 1500만원)를 받는 등 일부 고위 성직자들이 교황을 만나게 해주는 대가로 기업인과 명사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의혹도 실려 있다.

한술 더 떠 문서에는 바티칸 신문 편집장이 라이벌 편집장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그가 동성연애를 즐긴다고 이탈리아 신문에 제보한 내용도 담겨져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 교황청 대사로 전보된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가 일부 고위 성직자의 부패와 권력남용 및 정실 인사 등을 우려하는 내용으로 교황에게 보낸 비밀 편지도 공개됐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번 문서유출 사건이 가브리엘레의 체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칼날'이 차기 교황 후보이자 바티칸 서열 2위인 타르시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을 겨누고 있다는 주장도 솔솔 나온다. 바티칸의 ‘성호’라 할 수 있는 파올로 가브리엘레는 유죄가 확정될 경우 최고 3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폭로자, 언론보도, 의혹 확산…. 그 흐름이 최근의 조계종 승려 도박 및 잇딴 폭로 사태와 참 많이도 닮았다. 도박사건으로 맑고 향기로워야 할 부처님 도량이 진흙탕이 된 지금, 혹시 문제의 승려들은 이 기사를 보고 위안을 삼고 있지나 않을까.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들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왠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든다. 부처님오신날 전날까지만 해도 ‘폭로달인’ 성호 스님의 행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언론사가 왜 태도를 바꿔 교황청 기사를 게재했을까? 설마 오비이락이겠지만, 이 기사가 불교계의 자정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종교라는 것이 본래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식의 체념적 여론이 형성될까 두렵다. 불교계의 다수 여론은 이번의 사태가 아프기는 하지만 교단 자정의 기회로 승화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무원 안팎에서는 “누구누구가 00신문사 등을 방문해 도박 관련 기사 자제 요청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들의 자제 요청을 언론사들의 어느 정도 수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교황청 비리는 구체적인 문건이 있고, 폭로한 사람이 있고, 이를 이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근거가 있으니 자정 움직임도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이에 반해 조계종 사태는 폭로하겠다는 사람만 있을 뿐,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 누군지 분분하기만 하다. 폭로를 예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발언을 삼가고 있다. 그 중에 몇은 회유에 넘어갔다는 소식도 들여온다. 그러다보니 구체적인 물증을 들이대기 전에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팽배하다. 양심과 도덕성을 제일로 삼아야할 불교계에서 언제부턴가 증거제일주의가 설치고 있다.

‘모든 중생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태어남이고, 둘째는 늙음이며, 셋째는 병듦이고, 넷째는 죽음이며, 다섯째는 죄이고, 여섯째는 복이며, 일곱째는 인연이다. 이 일곱 가지 일은 아무리 피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법구비유경>

누가 피할 수 없는 길을 가려하는지, 누가 죄를 짓고 있는지, 누가 잘못된 인연으로 후회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부처님은 알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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