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urubella@naver.com 2008-12-02 (화) 11:16주말 고창의 백제 천년고찰 문수사를 찾았다. 아름다운 고찰 문수사의 명성을 듣기는 했으나, 직접 참배한 적이 없어 기쁜 마음으로 먼길을 나섰다. 단풍이 아름다운 절, 얼마전 화재가 났던 절이라는 정도가 문수사에 대해 기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기에 그 모습이 더욱 궁금했다.
문수사가 위치한 곳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이 절은 동백으로 유명한 선운사의 말사인데, 이 절에는 예로부터 영험하기로 소문난 문수보살 석상이 있단다. 본래 노천에 서 있던 것인데, 훗날 전각을 지어 모셨다고 한다.
4시간 가까이 달려간 끝에 문수사에 도착했다. 이파리가 대부분 진 늦가을, 초겨울인지라 소문난 단풍의 진수는 맛보지 못해 못내 아쉽다. 훗날 단풍이 흐드러지는 때를 맞춰 다시 한번 찾을 것을 다짐할밖에.
문수사의 역사는 과거 삼국시대로까지 올라간다. 당시 고구려와 신라, 백제에 각각 문수도량이 있었는데, 고구려는 오대산 상원사, 신라는 울산의 문수암(문수사), 백제는 이곳 고창의 문수사가 그것이다. 예로부터 ‘문수 3대 도량’으로 이름난 도량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깨달음을 얻은 다음 귀국해 이곳을 지나던 중, 산세가 중국의 청량산과 너무도 닮아 그곳의 암굴에서 7일 기도를 올리던 중 꿈에 문수보살이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놀라 깨었다. 다음날 바로 그 장소를 가 땅을 파보니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자장은 이곳에 절을 짓고 문수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지금도 문수사 뒤쪽에는 자장율사가 기도를 했던 자장굴이 남아 있다.
요즈음엔 대학입시철을 맞아 치성을 드리러 오는 이들의 발길로 분주한데, 대지혜의 보살이신 문수보살이 대학합격 기도의 대상으로 전락한 듯해 아쉬움이 없지 않다. 대웅전에는 재가 한창이다. 재를 모시는 스님의 염불소리가 구성지게 도량에 울려 퍼진다. 지극정성으로 올리는 재를 방해할 수 없어, 대웅전 뒤 문수전으로 바로 향했다.
단아한 맞배지붕의 전각인 문수전의 문을 여니 푸근한 인상의 석상이 반갑게 참배객을 맞이한다. 아! 문수보살님. 말로만 듣던 자장의 꿈에 나타나 세상에 모습을 나툰 천년의 세월을 지내온 문수보살님을 친견하니 절로 합장 오체투지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본 보관을 쓰고 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입상이다. 민머리에 통견을 걸치고 수인도 미륵상에서 많이 보던 것이다. 자장율사의 현몽이 아니었다면 미륵부처님이라고 불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1000년의 세월을 노천에서 견딘 석불상답지 않게 잘 보전되어 있다. 이렇게 아름답고 푸근하고 넉넉하고 자비로운 표정을 한 문수보살상이 계셨다니!
마음속이 환희심으로 밝아진다. 간절한 기도와 천수경과 반야심경 독송으로 문수보살님 전에 기도를 올린다.
<미디어붓다>가 크게 발전해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불연을 맺어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올 입시에 도전한 아들에게 지혜의 가피를 내려주시기를, 한국불교와 우리나라가 다 잘 발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내려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도량 곳곳에 무서리를 맞은 국화꽃이 안간힘을 다해 피어 있고, 절 입구에는 진돗개 두 마리가 낯선 손님들을 경계하고 있다. 아름다운 도량이지만, 법당 왼쪽으로는 불탄 한산전 터가 황량하게 남아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법당 왼쪽 편에는 졸졸졸 흐르는 문수보살의 지혜를 담은 감로수가 참배객을 부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수사로 들어가는 길가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단풍나무 숲이 유명해 가을이면 단풍을 진수를 만끽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에는 최소 100년에서 최고 400년이 넘은 단풍나무 500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가을이면 온 산이 타오르는 불길처럼 붉게 물든다.
현재 문수사의 경내에는 대웅전과 문수전, 명부전, 만세루, 금륜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