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명상에 대해 논하기 전에 해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전국 지도’부터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만일 어떤 사람이 국토를 알고자 하면서 ‘전국 지도’를 보지 않은 채로 ‘지방 지도’부터 보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재론의 여지없이 그의 모든 노력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서울에는 사람이 많고, 차가 많고, 빌딩이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그는 경상북도 안동이나 전라남도 목포에 도착하여 “이곳이 서울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한강은 강수량이 풍부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그는 작은 개울을 보고 “이것이 한강이다.”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 먼저 전국 지도를 보아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잡아놓은 사람은 동서남북과 상하좌우를 잘 분별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오류로부터 생겨나는 혼란에 빠지지 않습니다.
명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느 특정한 명상에 대해 알기 전에 전국 지도부터, 예를 들어 위빠싸나 명상은 어떤 것이냐, 화두 참선은 어떤 것이냐, 가톨릭의 묵상은 어떤 것이냐, 개신교의 영성 개발 기도는 어떤 것이냐 등등(이것들은 모두 지방 지도입니다)을 알기에 앞서 명상 자체의 위치를, 인간의 시간(역사) 속에서, 또는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명상이 어떤 것이며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시간(역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인간의 역사는 까마득한 시간 속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나긴 시기를 다 논하지 않고, 조금 좁혀서 역사 시대만을 전국 지도로 삼아 개괄해 보기로 합시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대략 6천 년에 이릅니다. 세계 4대 문명은 각각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황허 문명인데, 그중 앞의 세 문명은 6천 년, 마지막 문명은 5천 년 전에 성립하였다는 것이 역사 학계의 통설입니다.
6천 년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는 크게 보아 세 시기로 나뉩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세 시기는 각각 고대, 중세, 그리고 근현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다시 둘로 정리합시다. 중세를 고대에 붙여 넣어 인류의 역사는 고대와 현대로 나누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인류의 문명을 두 시기로 나눈다고 할 때 그 구별선은 어디에 그려질까요. 당연하게도 그 시기는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던 때입니다(이같은 문명 시기의 구별은 유럽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지만, 이에는 유럽사적인 의미와 함께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운동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재생’을 의미하며, 르네상스인들이 재생하고자 했던 것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정신이었습니다.
르네상스가 일어나기 전 유럽은 천 년에 이르는 중세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중세 내내 유럽인들은 기독교 교회(성서)에 의해 모든 것이 판단되고 재단되는 사회에 살았습니다.
중세의 시대 정신은 개인보다는 전체(국가· 사회· 교회)를, 현세성(세속성)보다는 초월성(종교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합리성보다는 초합리성(무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이기도 했는데, 사실 신으로부터 계시받는 성서적 지식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해가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해 보이는 면이 많습니다(예를 들어 《히브리(구약) 성서》에서 신은 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인간인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죽여서 제사를 올릴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다가 인간의 지성이 이제는 더 이상 불합리를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바꿔 말하여 인간은 세계를 성서에 적힌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감각과 이성으로써 직접 느끼고 파악해야겠다는 강한 욕구를 일으켰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14-15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 문화인, 예술인들을 휩쓸었는데, 그때 그들이 그리워한 것은 고대 그리스 정신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 거장을 배출한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비록 올림푸스 산 위에 신들이 있다고 믿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신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굴종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성이 납득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성을 가장 높은 인간의 덕목으로 여긴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르네상스 시기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신에게 종속되어 있던 인간이 믿음에 눌려 있던 이성을 내세우며 자기 주장을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고대 사회는 막을 내리고 근현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흐름(신으로부터 인간으로)은 왜 일어났을까요?
고대(원시 시대까지를 포함하여)와 현대를 구별해 볼 때 고대인은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적었습니다.
그들은 해가 왜 뜨는지를 몰랐습니다.
계절이 왜 바뀌는지도 몰랐습니다.
또한 그들은 바람이 왜 부는지, 구름이 왜 일어나는지, 천둥이 왜 치는지, 비가 왜 내리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밖에도 현대인인 우리가 아는 것으로서 고대인이 몰랐던 것은 많고도 많습니다. 또한 고대인은 현대인이 아는 것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뇌의 작용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세포에 대해, 유전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 말은 비록 미개한 고대인일지라도 그가 이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이해(앎)하고 싶어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고 싶다, 그러나 알지 못한다.”
이때, 고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선택한 것은 ‘가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이걸 거야.”
“그 까닭은 아마 저걸 거야.”
그들은 이런 식으로 세계와 자기 자신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런 중에 특별한(위대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특별하기 때문에 세계 너머, 또는 인간 이상을 봅니다. 그가 정말로 그것을 보았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자신이 그것을 보았다고 확신하고, 그 확신으로부터 초월적인 아우라가 그에게 생겨납니다. 고대인들은 그를 예언자· 선지자· 신의 사자(아들, 때로는 신 자체)라고 부르며 추앙하였습니다.
처음 그는 무(巫), 또는 사제였습니다(무(巫)라는 글자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이라는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사제 또한 신과 인간을 잇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높은 인격을 지닌 이들, 그냥 낮은 차원의 신적 존재로서의 무라고 부르기에는 망설여지는 거룩한 이들, 즉 성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통해 그동안 가설로써만 설명되던 것들이 어느 정도 증명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고대인들은 외쳤습니다.
“아, 이 세계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로구나!”
“아, 우리가 삶을 끝내고 가게 되는 곳은 천당이나 지옥이로구나!”
“아, 우리는 이런저런 길을 따라 살아야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고대인들은 어떤 성자의 가르침을 참된 지식으로 여겨 그것을 믿었습니다. <<strong>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