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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출가를 재촉한 어머니<br>"나는 이미 하늘에 환생했다"

| | 2009-05-18 (월) 09:34

의상법사에 의해 태백산에 부석사가 창건된 것은 문무왕 16년(676). 이로부터 태백산은 화엄의 빛으로 밝아지고, 화엄이라는 온갖 꽃, 즉 잡화(雜花)로 장엄되었다. 법사가 부석사에서 화엄대교(華嚴大敎)를 천명하고 있다는 소문이 신라 사회에 두루 퍼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그의 명성은 자자했다. 이 때문에 부르지 않아도 그의 문하에는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군대에 소속되어 있던 한 청년도 소문을 들었다. 의상법사가 태백산에서 불법을 설해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소문을. 군에 복역하는 여가에 틈틈이 품을 팔아 곡식을 구해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장가도 들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고 있던 청년, 그 젊은 청춘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당장이라도 부석사로 달려가 의상법사에게 귀의하고 싶은 충동으로.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던 청년이라고 구도의 정신이 없을 수 있으며, 교육 기관이 없던 시절이라고 어찌 배움을 향한 열정까지 없었겠는가? 화엄의 등불 밝혀진 부석사로 향하는 청년의 그리움은 구도의 열정이었다. 구도의 정신, 이것을 보리심(菩提心)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의 가슴 태우는 보리심, 그 보리심이 있기에 사람들은 용감하게 세속을 벗어나 구도의 길로 향할 수 있다.
의상법사에 대한 사모의 정이 아무리 깊어도 홀로 사는 어머니의 봉양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 그러기에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효도를 다한 뒤에는 의상법사에게 의탁하여 머리를 깎고 불도를 배우고 싶습니다.”
청년의 희망은 분명했다. 의상법사 문하로 출가하여 불도를 배우는 일, 그것이 그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홀어머니의 봉양은 피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그는 효도를 다한 뒤에 출가 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했다.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너무도 빠르다. 효도를 다한 후라면 이미 늦지 않겠느냐? 내 생전에 네가 불도를 들었다고 전해주는 것만 같겠느냐?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떠나도록 하라.”
“어머니 만년에 오직 제가 곁에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어머니를 버려두고 출가할 수 있겠습니까?”

“나 때문에 출가하지 못한다면, 나를 곧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비록 풍성한 음식으로 나를 봉양한다고 한들 어찌 효도가 되겠느냐? 나는 문전걸식(門前乞食)하더라도 타고난 수명만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효도를 하려거든 네 말을 고집하지 말라.”

비로사에서 바라본 소백산. 진정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의상이 작은 초막을 짓고 제자들에게 <화엄경><span class='wzicon enlargebtn plus'>크게보기</span></a>을 강설한 자리에 비로사가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모자간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가만히 눈물이 고인다. 진주 같은 눈물이.
효성 지극한 아들과 그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어머니.
그래도 모자간의 실랑이는 아름답다.
그 어머니는 안다.
불법은 만나기 어렵고 인생은 너무도 빠르다는 것을.
그러기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당신의 봉양을 위해 아들이 마냥 허송세월만 하게 할 수는 없는 법. 자신은 문전걸식하며 살아도 천수(天壽)를 누리며 살 수 있으니, 내 걱정일랑 말고 속히 떠나라고 하신다. 나의 진정한 행복은 내 생전에 네가 불도를 배워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기쁜 소식 듣는 것. 만약 나로 인해서 네가 출가를 못한다면, 아니 내가 너의 출가를 가로막는 꼴이 된다면, 나는 그 과보로 곧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 아니냐. 풍성한 음식으로 봉양한다고 하자. 어찌 그것이 진정한 효도가 되겠느냐? 네가 나에게 진정으로 효도를 하려거든 네 말을 고집하지 말라.
너는 어서 속히 내 곁을 떠나도록 하라.
제발 머뭇거리지 말고.
효성 지극한 아들은 탄식한다.
“어찌 어머니를 홀로 두고 출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아들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니 깊은 고뇌에 빠졌다.
오래 동안.
어머니는 단호했다.
쌀자루를 기우려 털었다. 모두 일곱 되다. 그 쌀로 밥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밥을 지어먹으면서 가면 더딜까 염려스럽다. 내 보는 앞에서 한 되 몫을 먹고 나머지는 모두 싸 가지고 빨리 떠나도록 하라. 속히 떠나가거라.”
아들은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아들은 사양했다.
“어머님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도 자식 된 도리로 차마 못할 것인데, 하물며 며칠 동안의 어머니 미음 꺼리까지 모두 싸 가지고 떠난다면 천지가 저를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들은 운다.
어머님을 버리고 출가하는 일이란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고.
어머니는 되묻는다.
풍성한 음식으로 나를 봉양한다고 그것을 어찌 효도라 하겠느냐고.
어머니는 불교적인 효를 말하고 있다.
고려 후기의 무기(無寄)는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에서 부모의 은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 태에 품으신 후부터 열 달 동안 마음을 놓지 않으며, 또한 낳을 때 고통이 끝없으나 낳은 뒤에는 괴로움을 잊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어 품에 안아 젖을 먹여 기르며,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주신다. 그 자식이 커서는 모셔 봉양 받을 것을 잊고, 사랑하는 마음을 끊고 놓아주어 스승에게 맏겨 출가하여 출세간(出世間)의 업을 닦게 하니 어버이의 은혜가 가장 깊다.
자식이 성장하면 부모는 봉양 받을 것을 잊을 뿐 아니라 사랑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끊고서 출세간의 업을 닦게 해주는 은혜, 이것은 분명 효의 불교적 해석이다. 아들의 봉양을 마다하고 출가를 권하여 출세간의 업을 닦게 한 진정 어머니의 경우야말로 이런 예에 속한다. 효는 불교에서도 중시되었다. 다만 효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그 차원이 다를 뿐. 일연은 진정사효선쌍미(眞定師孝善雙美)라고 했다. 진정법사는 효(孝)와 선(善) 두 가지가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온 아들, 그 아들이 진정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 그것은 곧 효인 것을.
다시 신라 시절로 돌아가 두 모자의 거듭 되는 실랑이를 보자.
어머니는 한사코 아들의 출가를 권하고 아들은 사양한다. 이렇게 사양하고 권하기를 세 번.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의 뜻을 더 이상 어길 수 없었다. 어머니의 뜻은 단호했기에.
아들은 마침내 집을 나섰다.
홀어머니를 두고서.

비로사 전경크게보기

태백산으로 향하는 청년의 가슴은 보리심(菩提心)으로 충만했으리라. 그도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도를 묻는 선재동자(善財童子)와 다를 바 없는 구도자였을 것이기에. 차례로 선지식을 순방한 선재동자가 마지막으로 미륵보살을 만났을 때, 미륵보살은 선재동자에게 보리심의 공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보리심은 일체제불의 종자다. 일체의 불법이 거기서 생기니까.
보리심은 좋은 밭이다. 중생의 맑고 깨끗한 법을 성장시키고 배양하기에.
보리심은 대지다. 일체의 세간을 지탱해 주기에.
보리심은 청정한 물이다. 모든 번뇌의 때를 씻어주니까.
보림심은 큰 바람이다.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으니까.
보리심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다. 모든 사견과 애욕을 태우니까.
보리심은 밝은 햇빛이다. 일체중생을 두루 비쳐주니까.
보리심은 맑은 눈이다. 정사의 도를 환히 분별하니까.
보리심은 문이다. 모든 보살을 실천 속으로 들어가게 하니까.
보리심은 인자한 어머니다. 온갖 보살을 길러 내니까.
보리심은 큰 바다다. 모든 공덕을 받아들이니까.
큰 바람과도 같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은 보리심, 가슴 가득 그 보리심 넘쳐나던 청년은 사흘 만에 의상법사 문하에 이르러 머리를 깎았다. 마침내 의상의 제자가 되었고, 법명을 진정(眞定)이라고 했다. 훗날 진정은 의상의 십성제자(十聖弟子) 중의 한 명이었을 뿐 아니라, 사영(四英) 중의 한 명으로 평가 되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에게는 큰 바람과도 같은 보리심이 있었기에.
태백산에도 세월이 흘렀다. 3년의 세월이.
출가한 아들 진정은 어머니의 부음(訃音)에 접했다.
진정은 가부좌로 선정에 들었다. 꼭 7일 동안.
조용히 앉아서 지극한 슬픔을 씻었다.
선정에서 나온 진정은 스승 의상에게 슬픈 소식을 아뢰었다. 의상은 이 위대한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화엄경> 강회(講會)를 개최하고자 했다. 의상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백산 추동(錐洞)으로 가서 초가를 짓고 제자 3천 명을 모아 <화엄경>을 강의했다. 장장 90일 동안이나. 이를 추동구십일회(錐洞九十日會)라고 했다. 물론 삼천 문도란 많은 제자란 뜻이고 실제적 숫자는 아닐 것이지만, 석 달 동안의 화엄법회는 성대했음에 분명하다. 신라 화엄시조 의상법사가 설하는 <화엄경> 강회(講會), 그 성대한 강경법회는 돌아가신 진정의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90일간의 강의가 끝나자 그 어머니는 꿈에 나타났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이미 하늘에 환생했다.”

김상현(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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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오호라 2009-05-20 09:46:43
답변  
청련화님 글 읽고 보니 정말로 어버이달에 딱 맞는 주제였네요. 일깨워주셔서 감사.
청련화 2009-05-20 00:33:29
답변  
어버이 오신달 ~~ 좋은글 ! 참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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