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김상현의 에세이삼국유사

소문은 바람결에 퍼지고

| | 2008-10-06 (월) 00:00

신라 헌안왕(憲安王) 4년(860) 9월 어느 날. 안압지에 있는 임해전(臨海殿)에서 궁중의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왕족이자 화랑인 응렴(膺廉)도 참석했다. 응렴의 아버지 김계명(金啓明)은 당시에 시중(侍中)이었고 어머니 광화부인(光和夫人)은 신무왕(神武王)의 딸이었으며 그도 희강왕의 손자였으니, 분명 그는 왕족이었다. 이때 응렴은 스무 살이었다. <삼국사기>에는 15세로 되어 있지만. 그는 18세에 국선(國仙) 즉 화랑이 되었다. 화랑들은 흔히 여행을 즐겼다. 그들은 유오산수(遊娛山水)해서 먼 곳이라도 이르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으니, 전국의 여러 명산대천을 두루 찾아 여행하며 수련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유학(遊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니, 화랑의 여행이란 단순히 놀러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응렴은 몇 년 동안 여러 곳을 유학했다.

안압지에 있는 임해전.크게보기

응렴, 아름다운 세 사람을 왕에게 추천하다

왕이 갑자기 응렴에게 물었다.

“낭(郎)은 국선이 되어 사방을 다니면서 놀았다니 무슨 이상한 일을 본 것이 있는가?”

“신은 아름다운 행실이 있는 자 세 명을 보았습니다.”

“그 말을 나에게 들려주게.”

“남의 윗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면서도 겸손하여 남의 밑에 있는 사람이 그 하나이고, 세력 있고 부자이면서도 옷차림을 검소하게 한 사람이 그 둘째며, 본래 귀(貴)하고 세력이 있으면서도 그 위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 그 셋째이옵니다.”

응렴은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지 살펴보고 있었다. 그 결과 겸손한 사람, 검소한 사람, 위세부리지 않는 사람 등 미행자(美行者) 세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갑작스러운 왕의 질문에도 차분히 대답할 수 있었다.

두 공주 중 하나를 선택해 장가들도록 하라

응렴의 마음을 떠보려 했던 왕은 조용히 왕비의 귀에 대고 말했다.

“내가 많은 사람을 보아 왔지만 응렴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응렴이 어질다는 것을 확인한 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했다. 그래서 말했다.

“나에게 두 딸이 있는데 낭의 시중을 들게 하리라.”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은 다시 술자리를 베풀어 응렴과 함께 마시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언니는 20세이고 동생은 19세이다. 오직 그대가 장가들고자 하는 대로 하라.”

응렴은 자리를 피하여 절하고 물러가 부모에게 고했다. 부모는 놀라고 기뻐하여 그 자제 (子弟)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였다.

“왕의 맏 공주(公主)는 모습이 몹시 초라하고 둘째 공주는 매우 아름답다 하니 그를 아내로 삼으면 다행이겠다.”

그러나 응렴은 주저하며 쉽게 결정하지 못하였다.

흥륜사 승 범교사, 초라한 맏딸을 택하라고 권하다

범교사(範敎師)는 흥륜사(興輪寺)의 승려이면서 동시에 응렴의 낭도에 속해 있었다. 여러 낭도(郎徒)들 중에서도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범교사는 소식을 듣고 낭의 집으로 왔다. 그는 낭에게 물었다.

“대왕께서 공주를 낭의 아내로 주고자 한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느 공주에게 장가들려고 합니까?”

“부모께서 둘째 공주가 좋겠다고 하십니다.”

범교사가 말했다.

“낭이 만일 둘째 공주에게 장가를 든다면 나는 반드시 낭의 면전에서 죽을 것입니다. 맏 공주에게 장가간다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경계하도록 하십시오.”

“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얼마 후 왕이 날을 가려서 낭에게 사자를 보내어 말했다.

“두 딸 중에서 공의 뜻대로 결정하도록 하라.”

사자가 돌아와서 낭의 의사를 왕에게 보고했다.

“맏 공주를 받들겠다고 합니다.”

옛 흥륜사는 세월과 함께 사라졌지만, 오늘날 새로이 중창된 흥륜사가 경주에 자리하고 있다. 크게보기

3개월이 지난 861년 정월 왕은 병이 위독했다. 여러 신하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나에게는 아들이 없으니 죽은 뒤의 일은 마땅히 맏딸의 남편 응렴이 이를 계승해야 할 것이다.”

이튿날인 정월 29일에 왕이 돌아가자 응렴은 유언을 받들어 왕위에 올랐다. 곧 신라 제48대 경문왕(861-875)이 바로 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헌안왕 사위 응렴이 왕의 유촉에 의해 쉽게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숭복사비문(崇福寺碑文)에 의하면, 왕위 계승으로 인한 대립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왕위를 노리고 까마귀처럼 모여드는 무리들이 간혹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21세의 젊은 응렴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버지 계명의 정치적 작용도 없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는 화랑 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유일한 경우다.

응렴, 화랑출신으로 왕위에 오르다

경문왕의 왕비는 영화부인(寧花夫人). 왕은 언니(영화부인)와 결혼한 지 3년 만인 863년 11월에 그 동생까지 맞아들여 둘째 왕비로 삼았다. 이에 범교사가 와서 말했다.

“제가 아뢰었던 세 가지 아름다운 일이 이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맏 공주에게 장가를 드셨기 때문에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그 하나요, 예전에 흠모하시던 둘째 공주에게 이제 쉽게 장가드실 수 있게 되신 것이 그 둘이요, 맏 공주에게 장가를 드셨기 때문에 왕과 부인이 매우 기뻐하신 것이 그 셋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고맙게 여겨서 범교사에게 대덕(大德)이란 법계(法階) 주고 금(金) 130냥을 하사했다. 왕비 영화부인은 경문왕 10년(870) 5월에 30세 젊은 나이로 죽었다.

경문왕은 임해전(臨海殿), 조원전(朝元殿), 월상루(月上樓), 정당(正堂) 등 궁궐 건물을 중수했다. 숭복사(崇福寺)를 중창하고, 동화사민애왕원탑 건립 및 개선사(開仙寺) 석등을 건립했으며, 황룡사구층탑도 완전 해체 중건했다. 화엄종의 고승 결언(決言)을 초청해서 <화엄경> 강의를 들었는가 하면, 선승 낭혜(朗慧)와 수철(秀澈)의 법문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양나라 유협(劉勰)의 문학평론서 <문심조룡(文心雕龍)>을 읽기도 했다.

응렴, 경문왕으로 즉위한 후 당나귀가 되다

그러나 경문왕은 왕위에 오른 후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의 귀처럼 되었다고 한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복두장(幞頭匠) 한 사람만은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왜 왕은 즉위한 후에 귀가 길어졌을까? 그것도 당나귀처럼 생겼을까? 흔히 당나귀는 어리석은 짐승으로 알려져 왔는데. 정상적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된 왕의 귀, 왕의 귀가 갑자기 사람과는 언어가 통할 수 없는 당나귀의 귀가 되어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문왕이 백성들의 호소에 귀 기우리지 않았던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복두장은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할 수 없었다. 무척 참기 어려웠음에도. 그는 죽기 직전에 왕경 초입(初入)에 있는 도림사(道林寺)로 갔다. 그 절의 대밭 속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간 그는 대나무를 보면서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

왕은 이 소리가 듣기 싫었다.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그 대신 산수유(山茱萸)를 심도록 했다. 그래도 그곳에서는 바람이 불면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약간 바뀌어 있었다.

“우리 임금님 귀는 기다랗다.”

도림사 대나무 밭에서 외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당나귀를 귀를 가진 사람은 그리스에도 몽골에도 있었다. 먼저 소아시아반도 프리지아(Phrygia)의 왕 미다스에 관한 이야기를 보자. 음악의 신 아폴로(Apollo)와 목동의 신(Pan) 판이 악기 연주 시합을 가졌다. 심판은 아폴로의 승리를 선언했다. 판의 추종자였던 미다스(Midas)왕은 공정하지 못한 심판이라고 항의했다. 이에 분개한 아폴로신은 미다스의 귀를 당나귀의 귀로 만들어버렸다. 미다스왕은 머리에 모자를 쓰서 귀를 감추었지만, 이발사만은 이 비밀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 할 수 없는 비밀을 혼자서 참기란 어려웠다. 그는 초원으로 나갔다. 땅을 파고 그 속에 비밀을 속삭였다. 그리고 흙을 덮었다. 봄이 되자 초원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발사가 불어 넣은 이야기가 바람결을 타고 속삭였다. 미다스왕의 귀는 당나귀의 귀라고.

몽골의 왕 려이한(驢耳汗)은 태어나면서부터 나귀처럼 기다란 귀를 가졌다. 평소에는 머리털을 길게 늘여 귀를 가렸지만, 머리를 깎을 때가 문제였다. 그래서 왕을 평민 이발사를 불러 머리를 깎은 뒤에는 모두 죽였다. 또 한 청년이 궁중으로 불려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젖으로 쌀가루를 반죽해서 경단을 만들어 주었다. 청년은 이발하면서 경단을 먹었다. 왕도 하나를 맛보았고, 그리하여 한 젖을 먹은 형제가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인해 왕은 그 청년을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자기의 비밀을 누설하지만 않으면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 청년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 비밀로 병을 얻었다. 라마승 의원은 말했다.

“마음속 비밀이 있으면 떨어놓기만 해도 병은 당장 나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머리만 저을 뿐이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바위에게 마음의 비밀을 말해보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청년은 집을 나섰다. 황야에서 다람쥐 구멍을 발견하고 그 구멍에다 비밀을 떨어놓았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청년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비밀을 들은 다람쥐는 다른 다람쥐에게 그것을 알렸다. 짐승들은 새들에게 전했다. 산속이나 들판이나 새나 짐승이나 같은 소리로 떠들었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청년을 불러 힐문했다. 청년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람쥐를 잡아 죽일 것과 평민에게도 귀를 가리는 두건을 쓰게 하면, 임금님과 구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왕은 그 지혜에 탄복하며 청년을 풀어주었다.

인간은 비밀을 말하지 않고 참기가 어렵다. 오래 참으면 병이 될 수도 있다. 축적된 억압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다면, 그 병은 나을 수도 있다. 신라의 복두장은 대나무 숲에서 외쳤고, 미다스왕의 이발사는 땅을 파고 속삭였으며, 려이한의 이발사는 다람쥐 구멍을 향해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 바람을 타고 소문은 퍼진다. 바람은 대나무 숲을 흔들고, 갈대를 나부끼게 한다. 바람이 불면 소문은 사방으로 퍼진다. 비밀은 풍문(風聞)이 되어 떠돈다. 다람쥐 구멍에 묻어두었던 비밀은 다람쥐가 퍼뜨렸다. 밤에 속삭이는 말은 쥐가 엿듣고, 낮에 하는 말은 새가 듣는다. 그러기에 소문은 바람결에 퍼지고 풍문은 돈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

다음 우화는 <잡비유경(雜譬喩經)> 중의 한 토막.

옛날 자라 한 마리가 있었다. 큰 가뭄으로 호수가 말라버렸다. 마침 자라 곁으로 온 학에게 구해줄 것을 청하자 학은 자라를 물고 다른 호수로 가기 위해 한 도시 위를 날아갔다. 그때 자라는 잠자코 있지 못하고 물었다.

“여기가 어딘데 자꾸 가기만 하는가?”

학이 곧 대답을 하자, 그만 입이 열려서 자라는 땅에 떨어져서 사람들에게 잡아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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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이학종 2008-10-07 10:14:23
답변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원고를 작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렇게 독자들을 위해 글을 써주신 것에 대해 거듭 고마움을 느낍니다. 교수님 홧팅!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