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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처를 낳은 처녀

| | 2008-07-14 (월) 00:00

백월산크게보기

백월산(白月山)은 창원시 북면에 있다. 8세기 전반 경 이 산 동북쪽 선천촌(仙川村)에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이 살았다. 부득의 아버지는 월장(月藏), 어머니는 미승(味勝). 박박의 아버지는 수범(修梵), 어머니는 범마(梵摩)였다. (<미륵하생경>에는 미래에 하생할 미륵의 아버지는 수범마(修梵摩), 어머니는 범마월(梵摩越)이라고 했고, <아미타고음성왕다라니경(阿彌陀鼓音聲王多羅尼經)>에는 미타의 아버지는 월상전륜성왕(月上轉輪聖王), 어머니는 수성묘안(殊勝妙顔)이라고 했다. 이 설화에는 각각의 부모 이름이 바뀌어 있다.) 두 젊은이는 나이 스무 살 무렵 출가했다. 부득은 회진암(懷眞庵)에, 박박은 유리광사(琉璃光寺)에 살았는데, 모두 처자와 함께 산업을 경영하며 지냈다.

신세(身世)의 무상함을 느낀 두 사람은 풍진 세속 벗어나 더 깊은 산골에 숨으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었다.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으로부터 오더니, 그 빛 속에서 금빛의 팔이 내려와 이마를 만져주는 것이었다. 그 꿈에 감탄하던 그들은 백월산의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갔다. 박박은 사자암의 판방(板房)에서 아미타불을 염송(念誦)하고, 부득은 동쪽 고개의 뇌방(磊房)에서 미륵불을 희구하면서 부지런히 수행했다.

채 3년이 못 된 709년(성덕왕 8) 4월 8일 불탄일(佛誕日)이었다. 날이 저물 무렵, 스무 살 쯤 된 아름다운 한 낭자(娘子)가 북암(北庵)을 찾아와 하루 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난초 향과 사향의 향기를 발하면서.

行逢日落千山暮 가는 길 해 지니 산은 첩첩 저문데,
路隔城遙絶四隣 길 막히고 인가 멀어 이웃도 없네.
今日欲投庵下宿 오늘은 이 암자에 묵어가려 하오니,
慈悲和尙莫生嗔 자비로운 화상이여, 노하지 마소서.

박박이 말했다.

“난야(蘭若)는 청정한 곳. 그대가 가까이 올 곳 아니라오. 이곳에서 지체하지 마시오.”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낭자는 남암(南庵)으로 가서 앞에서와 같이 청했다. 부득이 말했다.
“그대는 이 밤에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낭자가 대답했다.

“어찌 오고 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현사(賢士)의 덕행이 높다는 것을 듣고 도와서 보리(菩提)를 이루어 드리려 할 뿐입니다.”그리고 한 수의 게송(偈頌)을 주었다.

日暮千山路 해 저물고 첩첩한 길,
行行絶四隣 가도 가도 인가는 없네.
竹松陰轉邃 소나무 대나무 그늘은 더욱 깊고,
溪洞響猶新 골짜기 시냇물 소리 더욱 새로워라.
乞宿非迷路 자고 가기를 청함은 길 잃은 탓 아니고,
尊師欲指津 높으신 스님을 인도하려 함인 것.
願惟從我請 원컨대, 나의 청 들어만 주시고,
且莫問何人 길손이 누구냐고 묻지는 마소서.

부득이 놀라면서 말했다.

“이곳은 부녀자가 더럽힐 곳이 아니오. 그러나 중생을 수순(隨順)함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인데, 하물며 궁벽한 산골에 밤이 어두우니, 어찌 홀대할 수야 있겠소.”
그를 암자 안에 있도록 했다.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가다듬어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염송(念誦)에만 전념하였다. 밤이 깊었을 때다. 낭자가 부득을 불러 말했다.

“제가 해산할 기미가 있습니다. 화상(和尙)께서는 짚자리를 좀 깔아주십시오.”

부득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거절하지 못하고 촛불을 은은히 밝히니, 낭자는 벌써 해산하고 또 다시 목욕물을 청했다. 부득은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불쌍한 생각이 앞서서 또 물통을 준비하여 그 속에 낭자를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시켰다. 조금 있자니 통 속의 물에서 강열한 향기가 풍기고 물이 금빛으로 변했다. 부득이 깜짝 놀라자, 낭자가 말했다.

“우리 스님께서도 여기에 목욕하십시오.”
부득이 마지못해 그 말대로 했더니, 홀연히 정신이 상쾌해지는 것을 깨닫고 살갗이 금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옆에 문득 하나의 연화대(蓮花臺)가 생겼다.
낭자는 부득에게 앉기를 권하면서 말했다.
“나는 관음보살인데, 대사가 대보리(大菩提)를 성취하도록 와서 도운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있는 여인. 신라 토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크게보기

박박은 생각했다. 부득이 오늘 밤에 틀림없이 계를 더럽혔을 것이니, 그를 비웃어 주어야겠다고. 그런대, 어찌 된 일인가? 부득은 미륵존상(彌勒尊像)이 되어 연화대에 앉아 광명을 발하고 몸은 금빛으로 단장되어 있었으니.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여 예를 드리면서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까?”
부득이 그 연유를 자세히 말하자, 박박이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업장(業障)이 무거워서 대성(大聖)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대덕(大德)은 지극히 인자하여 나보다 먼저 뜻을 이루었으니, 원컨대 옛 약속을 잊지 마시고 나도 함께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통에 금물이 남아 있으니 목욕할 수 있습니다.”
박박도 목욕했다. 그리고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되었다.
미륵존상과 무량수불은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다투어 달려왔다. 우러러보고, 감탄하고, 그리고 참으로 드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부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불법(佛法)의 요체(要諦)를 설했다. 그리고는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달달박박과 노힐부득의 현신성도(現身成道) 이야기, 경덕왕(742-765)도 이를 듣고 감동했다. 왕은 사람을 백월산으로 보내 큰 절을 짓게 했다. 757년에 시작하여 764년 7월 15일에 완성하고 백월산남사(白月山南寺)라고 했다. 금당에는 미륵존상을 모시고 ‘현신성도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 하고, 강당에는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모시고 ‘현신성도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 했다. 아미타불상에는 얼룩진 흔적이 있었다. 금물이 약간 모자랐기에.

관음보살은 갖가지 몸으로 나타나 종종의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스무 살 아름다운 낭자의 모습으로 화신한 관음보살은 두 사람 수행자를 시험한다. 어둠이 내린 깊은 산속 북암, 처녀가 하루 밤 묵어가기를 청한다. 사향의 향기를 풍기는 그 낭자가 관음의 화신인 줄을 어찌 알랴. 박박은 매정하게 거절하며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는 파계가 두려웠을 뿐, 낭자의 딱한 사정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묵어가기를 허락한 남암의 부득, 흔들리는 마음을 염송으로 다잡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한밤중 낭자의 해산. 그것은 한바탕 큰 소동이었다. 더구나 산속 암자에서. 그것도 수행자 부득이 처녀의 해산을 돕기 위해 자리를 깔고 산모를 목욕시키는 등의 법석을 떨어야 했으니. 그래도 그것은 부처를 낳기 위한 시험이자 연극이었고.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일체보살의 어머니 마야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마야는 대환화(大幻化)의 뜻이 있다. 마술사[幻師]의 솜씨만큼이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해탈의 경지를 얻었기에 그는 세간(世間)을 관찰하고 화신(化身)으로 나타나는 지혜와 행위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신비롭다. 마야부인은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설명했다. 무엇 때문에 그가 일체보살의 어머니가 되는지에 대해서.

“불자야, 나는 이미 보살의 크나큰 원과 지혜가 환술(幻術)과 같은 해탈문[大願智幻解脫門]을 성취했으므로 항상 보살의 어머니가 되노라. 현겁(賢劫) 중에 모든 보현행원(普賢行願)을 수행하여 일체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 있는 자에게 내가 스스로 현신(現身)하여 다 그 어머니가 될 것이니라.”

삼국유사 남백월이성조.크게보기일연이 이미 평했듯이, 낭자의 해산은 마야부인이 일체 보살의 어머니가 된다는 의취와 같은 것이다.

부득은 낭자가 권하는 대로 목욕한 뒤에 미륵불이 되었다. 현신성도(現身成道)며 현신성불(現身成佛)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 현신을 가지고 곧 바로 불도를 이루었고 성불한 것이다. 중생의 몸을 버리지 않고 살아 있는 몸 그대로 성불한 것이다. 밀교의 즉신성불(卽身成佛)과 다를 것도 없다. 부모가 낳아준 이 몸, 하루 세끼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하지만, 그래도 이 몸으로 살고 이 몸으로 도업(道業)도 이루는 것. 그러나 어떻게 번뇌로 더럽혀진 중생의 몸을 씻고 무구(無垢)한 금색신(金色身)을 얻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화두. 누가 금빛 나는 무구의 목욕물을 준비해서 그대도 목욕하라고 권할 것인가?

계를 엄격히 지키고자 했던 박박은 찾아온 관음대성(觀音大聖)을 알아보지 못한 채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중생을 따르는 수순중생(隨順衆生)도 보살행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부득은 먼저 성불한다. 보살행, 이것이 성불의 중요한 조건이다. 보현행원(普賢行願)은 대승보살행의 구체적 표현이고, 수순중생은 보현행원 중의 하나다. “보현행원을 수행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려는 사람에게는 내가 현신(現身)하여 그 어머니가 될 것”이라던 마야부인의 말과 그 의취가 같다.

원효는 말했다. “보살도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닦되 동시에 대비(大悲)도 실천함으로서 자신은 물론 남도 함께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만일 대비를 버리고 바로 선정과 지혜를 닦는다면 이승(二乘)의 지위에 떨어져 보살도를 장애하고, 만일 자비만 일으키고 선정과 지혜를 닦지 않는다면 범부의 병에 떨어질 것이니, 그것은 보살도가 아니다.”라고.

삼기산(三岐山)에서 홀로 수행하던 원광(圓光)은 어느 날 신(神)의 충고를 들었다. “법사가 이곳에만 있으면 비록 자신을 이롭게 하는 행위[自利之行]는 있겠지만 남을 이롭게 하는 공[利他之功]은 없을 것입니다. 왜 중국에 구법하여 이 나라의 혼미한 중생을 지도하지 않습니까?”깊은 산에 숨어서 수행하던 자장(慈藏)도 어느 날 공중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홀로 착하기보다 바다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두루 구제함이 낫다.”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다.”

노힐부득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지금도 귀가 밝은 사람은 공중의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자기 홀로 착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을 두루 구제함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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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옹녀 2008-07-14 22:36:24
답변  
이세상에 나의 전신상이랄 수 있는 토우가 있다니 교수님 ! 경주의 여근곡은 토우와 연관이 있을까요 ?  남성들의 음욕을 다 받아드려 신라 화랑과 남성들은 스트레스가 없어져 1000년 왕국을 이어나갔나 봐요~~ 홍홍홍
김샘팬 2008-07-18 03:23:52
답변  
교수님, 달보다 손가락에 관심이 많은 중생들이 수두룩 하네요. ^^
연화심 2008-07-18 00:52:01
답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마야부인의 겨드랑이에서 탄생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하여간 부처님도 천불 만불이시니 어머님의 거시기에서 태어나신 부처님이 더 많은것이 아닐까요!
한중생 2008-07-20 18:33:09
답변  
허~~허 손가락이 없어면 어찌 달이 있는지 해가 있는지 알수가 있어야지요. 무고한 중생의 입장에서 보면 다만 손가락 방향에 달이 있다는 사실과 혹 밝은 보름달은 인연이 없어 못 보더라도 만에하나 초승달이나 달무리라도 보았어면....소원을 풀게소이다~ 그려` 거시기에 관심이 없는척하시는 고고하신'김샘팬님'의 댓글을 보고 한마디~~~~~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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