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봄비가 내립니다.
여명이 새벽을 깨우는 시각까지도
새벽예불 가는 돌계단에 봄비와 안개가 섞여
새롭고 희안합니다.

봄비...
농부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긴 겨울을 동백꽃과 함께 지낸 나에겐
이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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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만들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담담하게 동백꽃과 이별을 합니다.

동백나무는 참나무와 어우러져 있어야 합니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참나무 잎으로 가리고
겨울의 따스한 햇살은 받아들여 붉은 동백꽃을 토해냅니다.

동백나무만으로 이루어진 군락지는
꽃을 선명하게 볼 수 없습니다.
잎사귀로 햇빛을 가리느라 빼곡한 푸른잎사이로
언뜻언뜻 보입니다.

동백꽃의 자연스러움과
토종 동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 흔하지 않습니다.

미황사 동백꽃은
11월말부터 시작해서 한겨울을 지나
이듬해 3월 중순까지 피어납니다.

겨우내 못다 핀 꽃들이
봄비에 반짝이는 잎사귀 사이로 얼굴을 내밉니다.
봄비에 고이 떨어진 꽃들까지 합하면
지천입니다.

그 선명한 붉은 빛을 본 사람은
땅끝에서 돌아서면
새로운 시작이라는
열정을 얻을 것입니다.

그 얼굴보고자 한다면
서둘러 오세요.

동박새들
노래소리는 덤입니다.

- 미황사 동백숲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