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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수년이 흘렀다. 미술사나 미학의 전공자도 아니면서, 감히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과 예술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 법보신문에 발표하였고, 뒤이어 나의 서평 모음인 책 안의 불교, 책 밖의 불교(시공사, 1995)에도 수록하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다시 읽어보니, 못내 부끄럽다. 하지만, 야나기의 조선미술에 대한 애정은 이내 다시 되살릴 수 있었다. 마음 속 깊이에서는 남아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당시 불교와 함께 힌두교를 공부하고 있었기에, 힌두교에서 말하는 믿음개념인 박티(bhakti)의 번역어인 신애(信愛)라는 말을 빌려다 섰다. 저 힌두교의 한 종파는 오직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만으로 신의 은총을 입고 구원받는다 했는데, 야나기의 조선미술에 대한 태도가 바로 그같은 신애의 자세가 아니었을까라고 말이다.

크게보기그런데 당시 내가 읽은 『조선과 예술』의 한국어 번역본(박재삼 역, 범우문고)을 이번에 『柳宗悅전집』 제6권 수록본과 대조해 보니, 모든 글을 다 번역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의 벗에게 보내는 글', '그의 조선행', '조선민족미술관의 설립에 대하여', 그리고 '조선민족미술관전람회에 대하여' 등 4편이 누락되어 있다. 그 대신 '조선의 목공품'을 합편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든 것이다. 역자 스스로도 '부분 발췌 번역'이라 말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번역할 때에는 반드시 원전 그대로 온전히 옮겨야 하리라 본다. 이런 부분 번역의 폐해는 다른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로 막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공덕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빼어난 서정시인이었던 역자에 의한 이 『조선과 예술』의 한국어 번역은 아마도 한국의 民들에게 야나기 무네요시를 소개하는 가장 큰 공로자였음이 분명하리라 본다. 문고본이라서 가장 널리 읽혔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 조선과 예술의 한국어 번역본은 야나기 무네요시를 통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사에 이바지한 바 적지 않을 것으로 평가해서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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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예술』에 대한 독후감 이후 나는 지금까지 야나기를 잊고 살아왔다. 아니, 만날 뻔한 적은 있었다. 2002년 9월부터 2003년 8월까지, 나는 교토의 불교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주제는 아니었지만,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나름대로 고뇌하고 있던 나로서는 일본불교의 역사와 경험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마치 저 엔닌(圓仁)이 당나라에서의 견문을 기록하여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남겨듯이, 나 역시 편지 형식의 글을 썼다. 일본불교견문기인데, 2006년 12월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정우서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 내용 중에 묘코닌(妙好人)에 대한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쓸 때 현대에 이르러 묘코닌의 신앙세계에 빛을 비춘 인물은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와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비록 야나기를 통해서 묘코닌의 세계를 들여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민중들 가운데 독실한 믿음을 지닌 묘코닌이 수없이 태어났다는 것이야말로 염불문의 자랑이자 안목일 것이다(야나기 무네요시, 『나무아미타불』, 암파문고, 41쪽)라고 하는 야나기의 평가를 먼저 동의해 버렸던 것이다.

이번에 다시 야나기를 만날 수 있기까지, 십수년의 세월 동안 내 공부도 조금씩 변화해 왔다. 그 중에 가장 크게 들 수 있는 것은 일본불교사 공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01년 이래,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일본을 왔다 갔다 했다. 일본어도 조금은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야나기가 언급하는 나라, 교토, 가마쿠라 등지의 현장을 답사해 오고 있다. 이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 일제시대에 야나기가 했던 일을 이제 나는 역(逆)의 방향에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나라와 나라를 교류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정치가 아니라 종교다. 지혜가 아니라 정(情)이다. 다만 하나 종교적이거나 혹은 예술적인 이해만이 사람의 마음을 안으로부터 느끼게 하고, 느낀 것에 무한한 사랑을 일으키는 것이다.(「조선인을 생각한다」, 『전집』 제6권, 31쪽)

바로, 한국과 일본 사이의 악업사(惡業史)를 벗겨내려는 것이다. 이는 야나기도 여러번 말한 것처럼 일본이 한국에 범한 악업이었지 않은가. 그래서 아직도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머물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 조선과 예술은 다 잊었지만, 그때의 종자(種子)가 내 무의식(아뢰야식) 속에 살아있어서 였던 것일까. 나는 교토에 살 때부터 일본을 용서하자고 말하였다. 참회없는 용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참회하지 않아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회 여부와는 무관하게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자비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 우익 보수주의자들과 다른 입론(입각지)를 갖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잘못을 일깨우는 작업까지 그만두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민족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이익을 포함하여 인류문명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겨야 하기 때문입니다.(『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 153쪽)

그렇지만, 한국의 보통의 民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주문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하면 이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야나기는 조선예술에서 그 해답을 찾았지만, 나는 일본불교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일본불교를 공부하자! 그를 통하여, 일본사람들에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음을 보자는 것이다. 이 불성의 공유를 확인하게 될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애정을 가질 수 있으리라.

귀국 이후, 나는 『일본불교사 공부방』이라는 잡지를 편집, 발행하거나 일본불교사 강좌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의 출간 역시 그러한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야나기의 시대에 조선인 중에 일본의 예술을 공부하자!고 말한 사람이 존재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매우 어려웠던 시대였으리라. 마찬가지다. 아니, 역사는 진보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불교의 공부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신애하자고 말하는데 해방 이후 근 5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일본의 불교계나 불교학계에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학문적으로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는 몇 있으나, 내가 지금 일본불교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서 공부하자고 말하듯이 그렇게 한국불교의 역사에서도 종교의 극치를 보고서 교류와 애정의 손길을 내미는 불교인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나기가 일본에서는 民의 예술을 구하지 못했던가. 그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츠에(大津繪)나 모쿠지키불(木식佛, 식은 口변에 食)의 세계도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왜일까? 미는 통한다. 예술에는 국적이 없다. 야나기만은 조선과 일본의 전통 안에서 서로 통하는 보편적 미의 세계를, 그 불이의 미를 공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共觀은 내가 만든 말이다. 둘 이상의 대상을 함께 놓고 관찰하는 방법론적 술어이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다. 가마쿠라 신불교의 조사들이 이루었던 불교가 유독 일본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서 나를 보는 것, 거기에서 애정의 샘이 솟지 않겠는가.

3

한번 심어진 씨앗은 언젠가는 싹을 틔우는가 보다. 나는 야나기 무네요시를 다시 만났다. 왜 내가 지금까지 '나무아미타불'을 안 읽었을까. 아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때'가 가마쿠라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무나가타 시코(棟方志功)판화미술관에서였다. 야나기 무네요시로부터 타력문의 염불신앙의 영향을 받고 --- 운운하는 글을 만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구체적 교류관계를 알 길은 없었다. 우리 대학의 불교학과에서 한국불교를 공부하는 가와세 선생의 집에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와 거장들이라는 전시회의 도록을 만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하루 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 야나기와 무나가타가 다시 함께 하고 있었다.

크게보기일본민예관을 가봅시다.!

마침, 일본민예관의 오규 선생은 가와세 선생의 오랜 벗이 아닌가. 오츠에나 모쿠지키불을 처음으로 친견할 수 있었다. 서울 일민미술관에서의 전시 소식 역시 여기서 들을 수 있었다.

야나기의 연표를 보면, 그는 민예운동만이 아니라 타력의 염불문에 대한 명저도 남기고 있었다. 과연 이 둘 사이에는 어떤 통로가 가로놓여 있는 것일까? 또 야나기가 거기에서 본 '그 무엇'과 조선미술에 대한 신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하여 지금의 나는 구체적인 논증을 대면서 입론을 할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저, 직관적으로 하나의 가정을 세워보면서 전문가들의 가르침을 받고 싶을 뿐이다.

일본불교를 공부하면서 얻은 수확의 하나는 새로운 개념을 배우게 된다는 점에 있다. 그 하나의 예가 둔세(遁世)이다. 내가 둔세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마츠오 겐지(松尾剛次)의 책 인물로 보는 일본불교사(졸역, 동국대출판부)를 통해서이다. 마츠오 선생은 중세의 일본불교 교단을 거시적으로 조망할 때, 관승(官僧)과 둔세승의 체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관승은 천황을 위하여 기도하는 승려로서 일종의 공무원 신분이다. 이에 반하여, 관승의 신분으로부터 이탈하여 다시 한번 더 출가하는 것을 둔세승이라 말한다. 대표적으로 종래 가마쿠라 신불교 교단은 모두가 둔세승 교단이다. 야나기가 나무아미타불에서 언급하는 호넨 - 신란 - 잇펜 역시 모두 둔세승들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중세 일본불교를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현재 일본의 학계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러한 문제와는 별도로, 둔세승 개념을 빌려와서 불교사를 이념적으로 파악해 보고자 한다. 한편, 나는 둔세승을 권력추구의 욕망을 버린 승려로서 재정의한다. 그런 점에서, 권력을 통하여 자기종파의 포교를 기도하였던 니치렌(日蓮) 교단의 경우에는 둔세승이라 볼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한국으로부터 보는 일본불교」, 『山形대학역사, 지리, 인류학논집』 제8호, 2007)

이렇게 둔세승의 개념을 통하여 일본불교사를 개관하면, 둔세승들의 전통은 가마쿠라 이전에는 히지리(聖)에게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가마쿠라 신불교의 성립은 둔세승 교단이 불교사의 주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국불교사의 경우에도, 신라시대의 귀족불교 전통에서 어느 정도는 관승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원효 등의 민중불교의 모습은 일종의 둔세승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불교와 권력의 관계는 변함없이 밀접하게 이어진다. 이 시대 불교에서 둔세의 전통은 보조지눌(1158-1210)의 결사운동 등에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경우 가마쿠라 신불교에 이르러서 히지리에서 둔세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교단사의 주류로서 등장함에 반하여 한국불교사에서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언제나 비주류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둔세승들의 교과서적 이념에 가장 순수한 모습을 한국불교사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미 가마쿠라 시대에 '막부의 관승'화된 교단(예컨대, 진언율종)이 등장하지만, 이러한 권력과의 유착이 결정적으로 강화되는 것은 에도시대이다. 단가제도에 의해서 신불교이든 구불교이든 전부 에도막부의 관승화되는 것이다. 그 전통이 오늘의 일본불교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히지리 - 둔세승들의 전통은 에도시대에는 단절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모든 출가자들이 관승화된다면, 둔세승들은 재가자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야나기가 발견한 묘코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에 반하여, 조선불교는 유교를 지배이데올로기로 채택한 조선 정부와 유림에 의하여 둔세승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으로써 民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동진(同塵)하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신라나 고려시대의 불교를 황금시대로 보면서 조선의 불교를 쇠락된 불교라고 말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야나기가 말한 것처럼, 고려의 몰락은 불교의 몰락이었다.(이조도자기의 특질, 158쪽) 또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예술은 저 피안을 구한 불교의 예술과 현저하게 대비되는 것이리라.(159쪽) 하지만, 이때 야나기가 염두에 둔 고려의 불교는 관승화된 불교를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관승화된 불교가 몰락하고 새로 둔세승들의 불교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 즉 고려시대와는 달리 전면적으로 民과 하나가 된 시대에 예술은 '단순에의 복귀'(164쪽)가 이루어지고 '자연에의 귀의'(165)가 이루어졌는데 오직 그 民과 하나가 되었던 불교만은 몰락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거기에서 새로운 불교의 가능성이 구현되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전통을 우리가 보는 안목을 아직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 백자의 색을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자. 황제나 귀족의 색이 채색(彩色)이라고 한다면, 조선의 民의 색은 백색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둔세승들은 무슨 색의 옷을 입었을까? 흑색이다. 정확히는 먹물을 들인 옷인데, 회색이라 말해도 좋고 검정이라 말해도 좋다. 어차피 괴색(壞色)인 것은 마찬가지다. 일본의 불교에서도 둔세승은 흑의를 입는다. 그런 점에서 같은 색의 옷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승은 백의를 입었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에서는 흑의의 승려가 백의의 民과 하나가 되었으나, 일본불교에서는 백의의 관승들은 흑의의 둔세승들과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천황 귀족의 채색과 하나가 된 것이다. 더욱이 에도시대에 막부의 관승으로 화한 뒤에는 둔세승의 흑의도 사실 그 흑의의 상징성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승려는 흑의를 입고서 民의 편에 섰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民들에게 승려의 흑의는 그들의 백의와 동색(同色)으로 받아들여졌다. 야나기는 백색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자기(백자), 더 넓게 말하면 민예에서 조선미술의 정수를 보았다. 물론, 조선의 백자에 대한 야나기의 평가가 색에 대한 평가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조도자기의 특질」에서 논해지는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야나기 미학의 자랑과 안목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것으로 나는 평가하고 싶다. 이제 왜 민예운동을 한 미학자가 묘코닌이나 모쿠지키불을 좋아하게 되는지, 또 나무아미타불에서는 호넨-신란-잇펜(一遍)을 일자의 내면적 발전의 각각의 과정(33쪽)이라 보면서도, 다시 유행의 히지리였던 잇펜에게서 일본정토사상의 귀결점을 보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는 일맥을 이루면서 상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지금, 한국불교사에는 조선시대 무명의 民들과 함께 했던 둔세/무명의 승려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 역시 잇펜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교화는 내 일생에 있을 뿐이라(내 일생이 끝나면 나의 교화도 없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임종 직전에 자신의 저서를 다 불태워버린 잇펜처럼, 변변한 저술 하나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제자나 저서를 통한 자기상속의 욕망마저 버렸던 것이리라. 여기서 나는 불교인의 진실한 모습을 본다. 그런 의미에서 잇펜을 가장 높이 평가한 야나기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야나기는 가장 잊혀져 오고 있는(나무아미타불 243쪽) 잇펜에 대해서 많은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의 둔세승들은 잇펜 이상으로 고독 속에 묻혀있다. 그러나 그들의 흔적은 장송의례와 같은 민속, 문학작품, 혹은 민란의 움직임 등에서 적지만 몇몇 실마리를 남겨놓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제 이러한 전통을 다시 발굴하면서, 조선불교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불교학자들이 야나기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숙제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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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나기는 조선과 일본의 민예에서 보편성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 민예의 정신사적 뿌리를 둔세승의 불교, 그 중에서도 염불문에서, 그 중에서도 잇펜에게서 찾았다. 그에 의하여 불교미학의 중요한 한 측면인 정토미학이 완성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야나기가 염불문의 사상이 부사의하게도 조선에서는 큰 발전의 족적이 없고(나무아미타불, 25쪽)라고 말한 것처럼, 조선불교의 염불문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야나기가 말한 '조선'은 엄격히 '조선시대'로 한정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정토사상의 이론적 검토는 신라 고려에서 성행했지만, 조선에서는 실천적 측면이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나 스스로도 이렇다 할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의 숙제이다.

이렇게 나는 다시 야나기 무네요시를 만났다. 이제 다시 헤어지지는 않을 것같다. 여기서 이야기한 것 외에도 그의 종파적이지 않은 자세 등에서, 그는 이제 내가 읽고 써야 할 텍스트 명단에 등재되어야 함이 분명해 졌기 때문이다. 조선과 미술 한 권의 번역본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소라도 그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은 때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야나기와의 다시 만남은 나의 학문세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리라 예감한다. 사실, 대학에서는 전공만을 강의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 역시 내 주전공은 아니지만, 불교와 예술을 강의한 적도 있고, 지금도 인도의 예술과 미학같은 강좌를 담당하고 있다. 인도의 미학은 무엇인가? 인도미술사는 많아도 인도미학은 드물다. 가장 근접한 것은 『인도미술론고』를 남긴 우에노 테루오(上野照夫)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인도에도 민예는 있을까? 물론, 있다. 일본민예관 서적코너에서 만난 오키 모리히로(沖 守弘)의 사진집 『인도, 대지의 민속화』(미래사, 2001)에 나타난 미술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또 도대체 불교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도 이제 해결될 전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야나기에게서 찾으면 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는 '불교미학'이라는 용어를 쓰고, 「불교미학의 비원 서」 , 「불교미학에 대하여」(전집 제18권 수록)라는 글을 쓰고 있다. 다음 학기부터 시작되는 나의 인도의 예술과 미학 수업에서도 야나기가 말하는 불교미학은 분명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다시 때가 되면 나무아미타불과 같은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원(願)도 하나 생겼다.

(『민예』 652호, 2007년 4월호에 일본어로 발표됨)

김호성(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