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형중 박사(동대부중 교감)이 한국영화사를 바꾸고 있는 영화 ‘명량’을 보고 감상평을 보내왔다. 임진왜란이나 이순신을 그린 다른 여타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거나 애써 외면했던 승려 수군의 활약상을 그렸다는 소식에 반가움으로 한 걸음에 제일 먼저 극장으로 달려갔다는 김 박사의 해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명량 읽기’를 게재한다. 편집자

영화 명량의 기적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장군 휘하의 승려수군의 활약상

“장군, ‘명량’으로 관객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개봉 12일 만에 이미 천만을 돌파했고, 이런 대세로 가면 광복절 연휴를 전후하여 어쩌면 아바타의 1362만을 능가하는 한국영화사의 기적이 나타날 조짐입니다.

장군은 위대합니다. 지금 한국은 세월호사건 이후에 선장을 잃어버린 혼란 속에서 다시 부활하신 장군을 맞아 온 국민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장군을 버렸지만 장군은 나라의 신하로서 어육이 된 국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한 자랑스러운 영웅입니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을 물리친 장군의 신출귀몰한 전략과 리더십 그리고 애국심에 감동하여, 지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군의 신드롬에 빠져 ‘명량’ 앞바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7월 30일 아내와 함께 ‘명량’을 왕십리 CGV에서 보았다. 개봉 첫날인데도 빈 좌석 하나 없어 대박이 날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이 임진왜란 7년 전쟁이다. 7년 동안 남자들은 코와 귀가 잘려나가고 여자들은 능욕을 당하는, 그야말로 전 국토가 여지없이 유린당한 전쟁이다.

풍전등화와 같던 나라를 구한 사람이 23전 23승의 명장 이순신 장군이다. 그 중에서도 명량대첩은 가장 위대한 전투였다. 1597년 정유재란, 호남을 공략하지 않고서는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왜군은 진도 명량을 지나 해남 전라우수영을 점령하는 작전 계획이 있었다. 이순신은 왜군을 명량으로 유인하여 거센 조류와 조류의 변화를 이용하여 그들을 격파하였다.

명량은 아주 좁은 해협이다. 물살이 거세서 20리 밖에서도 물살 흐르는 소리가 울린다고 해서 ‘울돌목’이라 하고, 한자로는 ‘명량(鳴梁)’이라 한다. 좁은 바다에서는 많은 배가 한꺼번에 전투를 할 수가 없다. 이순신은 이런 지리적 조건을 이용하여, 12척의 배를 일자진(一字陳)으로 쭉 늘어서서 330척의 왜선과 대적한 것이다.

대장선에 서서 큰 칼을 차고 수많은 적선을 바라보는 이순신장군의 흔들림이 없는 비장한 모습은 어디서 오는 자신감일까? 죽기를 작정했으니 무엇이 두려우랴. 마치 장비가 홀로 형주 장판교 다리에 서서 조조의 만군 병사를 향해 “내가 장익덕이다. 앞으로 나와 생사를 가름하자.”고 고함을 치자 적군이 두려워서 아무도 접근을 못하여 위기를 모면한 ‘장판교 싸움’이 떠올랐다.

왜장 와키자카는 단숨에 이순신을 잡겠다고 이성을 잃고 감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180도로 회전하는 판옥선의 집중 화포 공격을 맞으면서도 거센 명량 회오리 물살을 향해 진격을 거듭하다 결국 수장되고 만다. 구루지마 역시 해적두목 출신으로 바다의 귀신이다. 형제가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이순신에게 목숨을 잃은 악연으로 이순신을 반드시 자기 손으로 잡겠다고 흥분하다가, 심리전에 휘말려 돛대에 목이 매달리는 패장이 되고 만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을 맞아 진도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왜선 330척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둔 너무도 빤한 역사적 사실이다. 원균이 이끈 수군이 칠천량전투에서 1만 병사가 죽고, 12척의 배만 남기고 대패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다시 수군통제사를 맡아 명량에서 기적을 이루어 낸 한나절 전투이야기이다. 김한민 감독은 이런 명량대첩을 소재로 해서, ‘적벽대전’을 능가하는 명화를 만들어냈다.

선조임금은 “바다를 포기하고 육군 권율 장군의 부대에 편입하여 싸우라.”는 어지를 내린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승산이 없는 전투는 개죽음이라며 명령에 불복한다.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러한 최악의 조건에서, 마치 제갈량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한 싸움처럼 명량대첩 또한 그렇게 전개된다.

영화 ‘명량’은 적벽대전’처럼 무대 배경이 웅장하고 화려하다. 음악 효과도 장엄하고 영화의 스케일이 크다. 명량바다의 물살소리나 회오리치는 물줄기는 무서우리만치 훌륭했다. 촬영의 수준이 여느 영화와는 규모가 달랐다. 이 영화가 성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대를 명량에 집중하고 제작비와 촬영기술의 대부분을 여기에 집중 투여함으로써 외국의 대형 영화에 밀리지 않는 스케일을 보여줬다.

61분 동안의 전투 장면 또한 화끈하고 통쾌하였다. 조선 수군의 화포전과 왜군의 백병전, 그리고 조선 판옥선의 충파전은 그야말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모습을 연출하여 긴장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하고 통쾌함이 있어야 한다.

이순신 대장선이 선두에 서서 왜선을 향해 무차별하게 쏘아대는 화포에 부서지고 침몰하는 왜선을 보고, ‘바로 저것이다. 저렇게 싸워서 우리가 이겼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지휘관의 전략전술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전투를 해서 적을 죽이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앞장서서 싸움으로써 솔선수범함이 군사들을 독려하고 감동시켜 합심해서 싸운 결과 불가사의한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탈영병사를 “군율은 지엄한 것이다.”고 하며 직접 칼을 뽑아 참수하는 이순신의 결단력과 엄격한 지도력 또한 감동적이었다. 아무리 아량이 넓고 자비로운 장수라도 전투 중에 탈영병을 용서한다면 군사를 지휘할 지도자가 아니다.

명량을 향해 출정하기 전에 병법 배수진법에 의해서 그 동안 머물렀던 진지 막사를 모두 불을 지르면서 남긴 장군의 말이 인상 깊다. “아직도 살고자 한 자가 있다니 통탄할 일이다. 우리는 살 수 없다. 육지라고 무사할 수 없다. 나는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목숨을 기대하지 마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병법에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의 적을 떨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제일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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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한 장면. 승려 수군의 모습이 보인다.

그 동안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승병의 활약을 다루지 않고 무시한 것에 대하여 섭섭하게 생각해 왔다. 이번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승려수군의 활약상이 나온다고 하여 어떻게 얼마만큼 나와서 역할을 하는가를 보기 위해서 나는 제일 먼저 달려왔다. 결과는 대단히 만족했다. 김한민 감독의 역사적 안목과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명량으로 출정하기 전에 승군이 이순신을 찾아와 함께 출정하겠다고 요청한다. 이순신은 “큰 힘이 되겠소.”라고 허락하고, 이어서 “전군은 출정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힘차게 노를 저어 바다로 나아갈 때 승군이 합장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전투가 시작되고 백병전이 전개될 때는 스님들이 피를 흘리며 장검을 휘두른다. 서산대사의 후예답게 승군의 참전은 오직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왜적의 목을 날려버린다.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는 순간이다. 승군의 활약상은 전투가 시작되면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고 이순신의 가까운 측근에서 호국불교의 화신인 사천왕이 되어 왜군들을 처단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산대사(묘향산)는 전국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보내 나라를 구할 것을 호소하였다. 제자 사명대사(금강산), 영규대사(충청도), 처영대사(전라도), 의엄대사(황해도) 등이 승군을 모집하여 총궐기하여 나라를 구하였다. 의병과 의승군은 관군 못지않게 전과를 올렸다.

여수 흥국사는 승군이 300여 명이 상주하여 상황에 따라 육군과 수군의 전투에 참여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난중일기’에도 승군이 수군에 편입되어 전투에 참전한 기록이 있다. 승군의 조직은 관군에 편입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유지 운영되었다. 주로 군비를 조달하고 성을 보수하는 일을 하였고,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첩보활동도 하였다,

‘이충무공전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호남에 사는 승려들이 이순신 장군을 위하여 재를 올리는데 사찰마다 올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자운이라는 스님은 이순신장군의 진중(陣中)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승군대장으로 많은 공을 세운 사람이다. 이순신장군이 돌아간 뒤에 정미 600석으로 노량(露梁) 앞바다에서 수륙재를 열고, 음식을 성대히 차려 충민사(忠愍祠: 이충무공의 첫 사당)에서 제사까지 지냈다”.

또 1594년 1월 이순신의 장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작년에 순천 의승장 삼혜와 의승장 의능이 연해안 각 고을에서 의승수군을 모집하였는데, 자원에 의하여 수군에 소속시켜 모두 전선(戰船)을 타고 적을 무찌르도록 하였다.… 도총섭 유정(사명대사)이 인신(印信)을 차고 남쪽으로 내려와 호남, 영남 각 사찰의 승려들을 수군과 육군의 승병으로 편입시켰다.”

또 1594년 3월 10일 이순신의 장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수군으로 자진하여 입대한 의병장 성응지와 의승장수 의능 등이 군병을 모집하여 각각 300여 명을 거느리고 나라의 수치를 씻으려 하니 참으로 가상한 일입니다. 바다에 진지를 치고 2년 동안 자기들 손으로 군량을 준비하여 이곳저곳 나누어 공급하며 간신히 양식을 이어대는 그 고생스러움은 관군보다 곱절이나 더합니다. 일찍이 적을 토벌하였을 적에도 현저한 공로가 많았으니 성응지와 의능 등은 조정에서 특별히 표창하여 뒷사람을 격려해야 하겠습니다.”

‘이충무공전서’에는 “옥형(玉炯) 스님은 이순신장군을 위하여 군량을 대어 자못 신임을 얻었는데, 스스로 장군을 위해 아무런 보답도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충민사를 지키며 날마다 쓸고 닦기를 하다 죽었다.”고 하였고, ‘여수읍지’에는 “옥형스님이 이순신장군을 따라 수군통솔자가 되어 한시도 장군의 좌우를 떠나지 않더니, 이순신장군이 죽자 충민사 곁에 암자를 짓고 모시기를 80세까지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명대사집’에 사명대사가 이순신장군에게 보낸 ‘이순신 수군통제사께 올리는 글(奉李水使)’란 시가 한 수 있다.

“남해를 지키는 절도사 대장군.

오랑캐처럼 거친 물결, 미친 위세 잠재우고 바다를 지키시네.

구월 구일 중양절이 생신날인데,

달 밝은 밤 왜적을 지키는 호가소리 병영을 울리네.”

이순신장군은 바다를 지켜 나라를 구한 영웅이고, 왜적이 물러가고 사명대사는 강화사가 되어 일본에 건너가 회교협상을 잘하여 7년 전쟁을 마무리한 호국대성사이다.

70세가 넘은 할아버지 스님인 서산대사가 말을 타고 장검을 차고 평양성 탈환 전투에 참전하며 전국의 승려들에게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오라고 격문을 보낼 때, 승려들은 늙은 스승의 부름을 듣고 울면서 따랐다. 나라와 임금이 버린 불교교단의 스님들은 중생구제와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호국불교의 전통에 따라 목탁 대신 창검을 들고 전쟁터로 나아갔으며,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보면 이런 시가 있다. “묘향산에 늙은 스님 서산대사를 보아라. 나라가 그들을 버렸어도 그는 산에서 내려와 장검을 휘두르네. 내 남아로 태어난 것이 심히 부끄럽구나.” 이것은 전국의 유생들의 마음을 울리는 계기가 되어 의병이 벌떼처럼 일어나 전쟁의 승기를 되돌릴 수 있었고, 마침내 임진왜란은 모든 국민의 하나가 되어 목숨을 걸고 애국심으로 싸웠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명량’의 싸움은 도저히 불가능한 싸움이었지만 불살생의 계율을 생명으로 삼고 수도하는 스님들까지도 칼을 들고 싸웠고, 말 못하는 벙어리 여인 정씨여인과 이름 없는 남편의 애국충절이 있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크게보기2002년 월드컵 때 우리가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4강의 기적을 일구어 낼 때의 감동과 흥분이 명량대첩에서 일어났다. ‘명량’이 대성공을 거둔 원인은 무엇이네 해도 이순신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 배우의 중량감 있는 연기와 그의 엄청난 포스가 영화를 살리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화폐 속에서 본 이순신보다는 아, 이 모습이 이순신장군의 모습이겠다.’고 생각했다.

명량전투가 끝나고 수봉이 이순신에게 토란을 대접할 때 이순신의 한 마디 말이 지금도 내 마음을 울리고 있다.

“먹을 수 있어서 좋구나”

김형중/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동대부중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