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도적인 동물 ‘살처분’의 제도적인 방지책과 실천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가 열렸다.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 스님)은 2월 28일 올해 첫 조계종 교육아사리 포럼의 주제를 ‘조류독감(AI)과 살처분’으로 잡고 조류독감과 구제역 등으로 인해 발생되는 살처분 문제를 불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원영스님 “‘동물권’ 관련 법령 정비해야”

크게보기발제자로 나선 조계종 교육아사리 원영 스님(사진)은 현황 설명을 중심으로 한국의 가축전염병 예방·방역제도의 실상과 구조적 문제점을 조명했다. 원영 스님은 정부 당국의 ‘동물복지’에 대한 후진적인 인식과 관련 제도 미비가 살처분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정부당국은 사육동물의 질병과 방역과 관련해 잔인한 방식의 대규모 예방적 살처분 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충격과 윤리적 우려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민들의 향상된 ‘동물권’에 대한 요구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원영 스님은 철저한 가축전염병 예방법 등을 시행하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에 비춰 2013년에 도입된 ‘동물보호법’과 ‘가축전염예방법’ 법령의 미비한 부분을 개선, 동물권에 대한 2차 추가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방, 방역, 보상 등에 관한 획기적인 예산확충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불교계에서는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소속의 ‘불교생명위원회(가칭)’을 구성, 생명윤리와 관련한 제반 문제를 연구하고 사회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승가 교육과 신도 포교에도 생명윤리에 대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

벽공 스님 “불교는 신도 향해 ‘육식 자제 캠페인’ 해야”

현황과 법률 개선을 중심으로 살처분 문제를 바라본 원영 스님의 발제에 이어 토론자들은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살처분을 인식하고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계종 교수아사리 벽공 스님은 먹거리와 생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육식 위주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장식 사육이 만연하며, 이에 따라 조류독감 등의 전염병이 발병한다는 것이다.

벽공 스님은 “진부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불교 종단에서 해야 할 일은 불살생계와 그와 관련된 육식 자제 캠페인”이라며 신도교육을 통한 육식 자제 운동, 불살생을 중심으로 한 승가교육 등의 인식개선 운동을 촉구했다.

허남결 교수 “소비자가 AI 고기 먹지 않아 살처분”

허남결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는 정부에 겨냥된 질책의 방향을 소비자에게 돌렸다. 소비자가 조류독감에 걸린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살처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살처분의 잔인함에 공분하면서도 식탁 위에서는 ‘질병의 위험성이 없는 고기를 계속 먹고싶다’는 욕망을 표출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살처분이 일어난다”며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AI 걸린 고기를 싼값으로 그냥 먹을 수 있어야 바보 같은 살처분 행위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참 이상한 말”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축산농가의 자본주의적 경제 논리를 지적하며 “평소에 위생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보상제도의 허점이 조류독감을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우희종 교수 “전염병 ‘발생’과 ‘창궐’은 다른 문제”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도 소비자의 몫을 강조했다. 우 교수는 “다량의 항생제와 성장호르몬 및 밀집사육으로 대표되는 공장식 축산은 결국 과도한 육식문화의 요구를 뒷받침하고, 소비자들의 겉보기 좋은 상품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함”이라며 소비자의 건강한 식품에 대한 인식전환과 요구 없이는 지금과 같은 대량매몰 상황은 개선되기 어렵다고 했다.

질병의 ‘발생’과 ‘창궐’은 다른 문제라는 지적도 예리했다. 우 교수는 “주목해야 할 것은 전염병의 유행이자 창궐에 의한 피해이지, 발생이 아니”라며 “전염병의 발생 자체는 생태계 내의 자연스런 모습이지만 발생이 적으면 유행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적어지기에 발생 원인에 대한 논란보다는 발생이 쉽게 일어나고 확산을 조장하는 요소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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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1차 조계종 교육아사리 포럼 참석자들이 원영 스님의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와 교육원이 연이어 살처분 관련한 대중공사를 개최한 가운데 불교계가 내부 논의를 넘어 사회를 향해 생명윤리와 관련한 목소리를 어떤 방식으로 표출할지 관심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