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졸속 복원과 관련해 불거진 문화재 관리 문제가 석굴암의 붕괴위험,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훼손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보다 근본적인 문화재 보존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재의 절대적인 부분(60% 이상 추정)을 차지하고 있는 성보(聖寶, 불교문화재)를 안전하고 최적의 상태로 보전해야하는 일차적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불교계에는 보유하고 있는 성보를 제대로 관리할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현안으로 등장했다.

문화재에 이상이 있으면 문화재청에 알리거나 관련 전문가를 불러 점검을 하는, 다시 말해 성보의 보존 관리를 국가나 외부 전문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문화재청 공무원이나 교수 등 전문가를 불러서 문화재 관리를 맡기는 것은 문화재 관리의 지속성을 기대할 수 없을뿐더러 제대로 된 관리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화재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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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대상이기도 한 사찰문화재, 즉 성보의 보존 및 관리를 외부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자체 연구기관 설립 및 인재양성 등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진= 한국천통문화대학교 홈페이지서 캡쳐.

최근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훼손 상태를 직접 점검한 바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정용재 교수(보존과학과)는 이제 우리나라도 사찰 문화재 보존 및 복원을 담당하는 전문기관이 만들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언제까지 신앙의 대상이기도 , 그래서 성보라고 불리는 사찰문화재를 외부의 전문가나 국가에만 맡길 것이냐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그 모범적인 사례로 일본의 간고지(원흥사)문화재연구소를 제시했다. 우선 해인사나 통도사, 불국사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거나 불교문화재를 대표하는 사찰부터 사찰 자체로 ‘사찰문화재 보존복원 전문기관을 만들어 성보의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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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고지(원흥사)문화재연구소의 로고. 간고지문화재연구소는 일본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위와 실력을 갖춘 문화재보존관리 전문기관으로 명성이 높다.

예컨대 해인사에는 경미한 경판 수리를 담당할 목재보존실이나 법보전 수다라전 내부의 온·습도 및 충해 발생을 모니터링할 보존환경실, 그리고 기록화(3D)를 담당할 기록화실 등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경판 보존복원 전문가를 양성하고 보존관리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경판의 보존 관리도 문제가 생겼을 때, 마치 큰일이나 난 것처럼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정부가 나서서 대책마련에 부산을 떠는 원시적인 보존관리 형태에서 벗어나 매년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관련 데이터와 기술을 축적해가면서 보존해가는 시스템으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정 교수의 지적대로 일년에 4000여 경판을 관리하게 되면 20년 걸려 전체 경판을 수리 또는 관리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른 많은 학술적 연구와 보존기술 축적이 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팔만대장경 경판 조사과정에서 해인사는 사찰내에 경판보존위원회를 구성해서 중장기 계획을 세워가기로 했다. 그러나 보존위원회 하나 덜렁 만들어 놓는 것으로는 충분할 수 없다. 보다 치밀하고 중장기적인 방안수립이 전문가들의 자문과 관계자들의 오랜 토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본 나라의 간고지(원흥사) 문화재연구소는 이런 면에서 매우 훌륭한 모델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간고지는 반세기 전인 지난 1961년 간고지 경내에서 발굴 조사실을 만들고 발굴 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문화재 보존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1967년에는 재단법인 간고지 불교민속자료연구소로 정부로부터 공식 인가(문화재보호위원회 허용)를 받았고, 1970년에 간고지 경내에 연구소를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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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고지문화재연구소의 리프 캐스팅 메소드 작업. 리프 캐스팅 방법은 종이 복원의 물리적 방법 중의 하나이다. 벌레 먹거나 구멍이 난 곳에 원재질과 유사한 종이 원료를 흘려 넣음으로써 원래의 종이 1장으로 복원해내는 보존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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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고지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 이동식 X-ray를 이용해 단층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간고지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 사진 캡쳐

이렇게 사찰 문화재의 보존관리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간고지 문화재연구소는 사찰 단위의 범주를 벗어나 1971년에 동경국립문화재연구소 및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와의 협력·지도를 통해 보다 체계적인 연구 시작했고, 1977년에 재단법인 간고지불교민속자료연구소를 문교부 인가를 통해 재단법인 간고지 문화재연구소와 분리시키는 등 보다 전문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이런 성과로 인해 1997년에는 연구소 창립 30주년 및 간고지문화재연구소 증축하고, 간고지를 세계문화유산등록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 2004년에는 재단법인 간고지 문화재연구소의 부서를 보존과학연구실과 6개실로 개편했다. 올해(2013년)에는 공익 법인제도에 따라 ‘공익재단법인 간고지문화재연구소’(정식명칭)로 명칭을 바꿨다.

공익재단법인 간고지문화재연구소의 연구실은 ‘인문과학연구소’, ‘고고학연구실’, ‘보존과학연구실’, ‘목기저장연구실’, ‘금속기저장연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고지문화재연구소는 일본의 철저한 성보문화재 관리의 표본으로 사찰이나 교단중심의 문화재 전문가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간고지(원흥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문화재보존처리연구소는 일본 내에서 세 손가락으로 꼽히는 최고의 문화재보존관리 기관으로, 전문 연구자만 40여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성보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보나 보물 등을 전문적으로 도맡아 보존처리하고 있기도 하다.

간고지문화재연구소는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의 문화재보존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히는 경남 양산 통도사의 탱화(1734년) 부식을 막기 위해 일본 간고지문화재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한국, 일본, 대만의 합동팀(25명)이 발족했다. 합동팀은 그해 6월 활동을 개시해 탱화 복원과 함께 안료를 분석해 모사 작업을 행하는 등 불교회화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

불교계 사찰이 자체 문화재보존관리를 위한 전문기관을 설립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찰문화재가 성보, 즉 신앙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경배의 대상이요, 귀의의 대상으로서 여타 문화재와 구별되는 사찰문화재는 가능한 불심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보존·관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종교, 특히 배타적인 신앙관을 갖고 있는 외부의 전문가에서 소중한 성보를 맡겼을 때 과연 제대로 된 보존 및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문화재를 무조건 국가에서 보존 관리해줘야 한다는 현재의 불교계 인식은 문제가 있으며, 자체적인 연구소 설립이 종단 또는 주요 사찰 단위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 연구소가 종단, 또는 사찰 산하에 있다고 해서 전문성이나 독립성이 인정되고 보장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는 만큼 이 분야에 대한 제도적 장치마련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소장은 특히 불교계가 눈앞의 이익이나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보다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서 이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조계종이 운영 중인 불교문화재연구소도 발굴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문화재, 즉 성보의 체계적 보존 관리를 위한 연구 기능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또한 문화재 보존관리 전문인력 양성과 활용을 위한 중앙승가대학 등 종립대학 차원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나라 간고지(元興寺)는?

백제의 기술자들이 만든 기와가 빛나고 있는 국보·세계유산

원래는 아스카에 건립되었던 호코지(법흥사-현재의 아스카데라)가 전신으로, 천도와 함께 718년에 헤어조쿄에 신축 이전하여 간고지로 개칭되었다. 호코(法興)와 간고(元興)는 모두 ‘일본에서 가장 처음으로 불교가 흥성한 사원’이란 뜻이다. 이전 당시의 간고지는 사루사와이케를 사이에 두고 ‘북쪽의 고후쿠지’, ‘남쪽의 간고지’로 불릴 정도로 광대한 부지와 가람을 소유하고 있었다. 가람의 북쪽에 있었던 승방지역이 현재의 극락당과 선실이 있는 장소이다. 극락당과 선실에는 백제국왕에 의해 파견된 기와박사가 만든, 호코지 창건 당시의 기와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적갈색, 흑색계는 아스카시대, 백색계는 나라시대, 회색계는 쇼와시대의 기와라고 일컬어진다. 이 기와들은 백제의 수도였던 한국의 부여의 기와와 매우 닮아 있어, 두 나라의 깊은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극락당과 선실은 현재 국보이지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극락당에는 아미타삼존불을 중심으로 극락정토의 세계를 그린 지코만다라(普光曼茶羅)로 불리는 정토변상도가 모셔져 있다. 13세기경에는 이 지코만다라를 본존으로 모시는 간고지 극락당의 정토신앙이 번성하여 서민의 절로서 사랑받았다. 옛 대가람의 유적은 현재 나라마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