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중진급 승려들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돼 있는 불교 연수원에서 밤새 ‘술판’을 벌인 사실이 <한겨레>에 의해 현장사진과 함께 보도됐다. 이는 지난 해 부처님오신날 직전 백양사에서 벌어진 도박사건에 이은 승려들이 저지른 대형사고로 인터넷판에 게시된지 2시간 만에 댓글이 1000건에 육박하는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을만큼 커지고 있다.

지난 해 도박판은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인 총림의 방장 49재에 참석한 승려들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었고, 이번 술판은 조계종단을 대표하는 연수시설인 공주 마곡사 옆 한국문화연수원(전 불교전통문화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종단의 핵심 사찰이나 핵심 시설에서 종단의 중진급 승려들이 범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다시금 확인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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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넷판의 보도 사진 캡쳐. 10여 명의 승려들이 둘러앉은 상에 소주와 캔맥주 등이 가득 쌓여 있다.

이번 술판은 특히 교계 언론이 아닌 중앙일간지에 의해 기사화됐다는 점에서 그 충격과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해 백양사 도박사건으로 인해 총무원 집행부 부실장들이 총사퇴하고 총무원장도 거센 사퇴 압박에 시달린 전례로 볼 때,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느 정도로 번질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한겨레에 따르면, 승가대 동기인 10여명의 승려들은 지난달(11월) 28일 밤 충남 공주의 한국문화연수원 레크리에이션 룸에서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께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셨다. 본지 취재결과 이 승려들은 중앙승가대 12기로 밝혀졌다.

조계종 총무원이 지난 2009년 ‘불교식 수행’의 대중화를 목표로 설립한 이 연수원은 불교 관련 기관 외에도 정부·기업·학교 등 100여개 기관들이 연수 장소로 이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연수시설이다.

한겨레는 이날 밤새 승려들의 노랫소리가 일반인 이용자들이 묵고 있는 인근 숙소에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연수원에선 일반인 이용자들에게는 구내에서 술을 마시지 말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등 승려들의 음주 및 고성방가 행위를 꼬집었다.

이날 승려들이 술을 마신 레크리에이션룸은 30인석 규모로 노래방 시설이 갖춰져 있다. 술자리가 끝난 레크리에이션룸에는 승려들이 마시고 난 1박스 분량의 소주병과 3박스 분량의 맥주캔, 먹다 남은 문어 숙회와 과일·오징어포 따위의 안주가 남아 있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한겨레는 또 “불교에선 불교도이면 모두가 지켜야 하는 기본 생활 규범인 ‘오계’에서 ‘술을 마시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명시해 일반 불자들이 아닌 중진승려들에 의해 저질러진 파계행위를 거듭 지적했다.

술판에 동참한 승려들 가운데에는 종회의원들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특히 ”3선의 중진 승려이자, 아산의 한 사찰 주지인 이 승려는 지난 10월 실시된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재선에 나선 자승 스님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고 밝혀 이 승려가 한국문화연수원의 책임자인 ㅊ 승려임을 사실상 드러냈다. 한겨레는 또 이 승려가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20년 만에 도반들이 모여 소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종단 소유 시설이라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총무원장 선거과정에서 승려들의 범계행위가 선거기간 내내 가장 큰 이슈로 등장해 그 어느 때보다도 승려의 범계문제가 종단 안팎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가운데 또 다시 발생한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불교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의 한 중진 스님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큰 일 났다. 한국불교가 어떻게 되려고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한국불교가 다시 태어난다는 차원의 무엇인가 아주 획기적인 승가내 자체 쇄신 없이는 이번 충격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한국불교가 공멸의 길로 갈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