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 괘불 부처님이 동네 마실 나오는 날,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의 정성으로 부처님을 맞는다.

10월 19일 부처님 오시기로 약속한 날, 내내 싸늘했던 기온이 사르르 풀리고, 높고 파란 가을 하늘 아래로 새털구름 파도처럼 깔리고, 웅장한 괘불 부처님 돛처럼 올라가자 마당을 가득 메운 사부대중, 저마다 손에 핸드폰 카메라 쥐고 두 손을 쭉 뻗어 은근하고 깊은 눈동자 드러낸 괘불 부처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 없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의 특별한 잔치, 괘불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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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미황사 괘불재에 참석한 사부대중이 각각의 일 년 결실로 만물공양을 올리고 있다.

“미황사에 사는 금강입니다. 지난해 템플스테이 10주년 기념 대상으로 받은 공로패와 운영실적우수모범사찰로 받은 표창패와 아리랑TV에 출연해 불교언론인 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붓다 앤드 크리스트’ DVD를 올립니다.”

“처음으로 고추와 콩 농사를 지었는데 처음치곤 아주 잘 되었습니다. 고춧가루와 콩을 올립니다.”

“며칠 후에 딸이 결혼을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인내하는 예쁜 삶을 살기를 발원하며 무화과 잼을 올립니다.”

괘불 부처님과 대중이 교감하는 ‘만물공양’은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으로부터 시작됐다. “부처님 앞에 올리는 공양이 상패와 DVD라고?” 놀랄 일이 아니다. 올해 불단에 올라간 공양물은 찹쌀, 떡, 벌꿀, 밤, 건강식품, 자반, 수제 연잎차, 음반, 영상물, 데뷔앨범을 망라한, 개개인의 일 년 결실 그 자체였다.

고추이든 무화과 잼이든 앨범이든 상관없다. 이렇게 맛난 음식을 부처님과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 부처님에게 자랑하는 것도, 칭찬 받고 싶은 것도 모두 괜찮다. 365일, 때로 넘어지고 때로 다쳤을 지라도 스스로 떳떳한 삶이기에 그 결정을 부처님 앞에 올리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며, 부처님 당시 꺼지지 않았던 가난한 여인의 형형한 등, 빈자일등의 정신과도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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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이 사부대중을 대표해 평화로운 세상을 발원하는 고불문을 낭독하고 있다.

미황사에 모인 이 아름다운 대중은 괘불재를 시작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발원했다.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은 사부대중을 대표해 “저희들이 오늘 여기 모인 뜻은 무명을 돌려 지혜광명 본원생명으로 살고자 함이며 탐욕과 미움을 돌려 차별 없는 평등과 평화의 세계 구현하고자 함이며, 분별과 경쟁의 마음을 돌려 원융과 화엄의 청정국토 성취하고자 함이며 일체고난 소멸하고 안락과 행복의 열반세계 도달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라고 말했다. 괘불 부처님, 대중의 어여쁜 마음에 감응이라도 하듯 미황사 대웅보전 처마자락 앞에서 너울거렸다.

이윽고 2천여 사부대중은 북 소리에 입을 맞춰 본래 청정한 자신의 본 마음을 밖으로 나타내는 ‘나무아미타불’ 정근과, 자비심 가득한 실천행을 하며 살겠다는 원력을 담아 ‘관세음보살’ 정근을 했다. 콩 한 되, 쌀 한 말에 담은 공양에 담은 소박한 소원이 통천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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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사랑은 희망의 깃발이요 부처님"이라고 법문했다.

이어 멀리 서울에서 내려온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법석에 앉았다. 현응 스님은 2천여 사부대중을 마주보고 앉아, 사랑을 말했다. 현응 스님이 보는 괘불탱화의 석가모니불은 사랑의 다른 이름인 미륵불과도 같았다.

“오늘 이 괘불재 도량에 우리들의 희망처럼 내걸어서 표방하는 부처님은 사랑이란 이름의 미륵부처님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희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표방해서 내건 것입니다. 희망은 자유, 평화, 그리고 정의에 대한 강력한 기대와 바람입니다. 미황사의 인연들, 여러분의 인연은 해남 미황사에서 사랑을 내걸고 표방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은, 희망의 깃발이요 부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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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 괘불 부처님전에 삼배를 올리고 있다.

뉘엿뉘엿 해 질 즈음, 괘불 부처님은 짧은 나들이를 마친다. 내년 괘불재까지 하나하나 찬찬히 보듬을 2천 사부대중의 감사, 희망, 사랑의 마음을 품고 대웅보전 안으로 귀가한다.

이제 괘불재의 남은 저녁은 온전히 대중의 몫으로 남는다. 미황사 마당에 둘러 모여 나지막한 멜로디 흥얼거리며, 동네방네 흥을 돋우며, 내년 괘불 부처님과의 만남을 기약할 것이다. 달마산 너머로 괘불 부처님 가사 같은 주홍 노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