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이 ‘독자적인 선법’이 아니라, 달마의 선법은 조계혜능의 선법을 계승했던 소위 남종의 법맥만이 정통이고 북종의 법맥은 방계라는 ‘중국선종의 사관’을 충실히 계승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4조 도신의 법을 이어 희양산문을 연 법랑-신행의 법맥을 정통의 법맥으로 부각시킬 필요성 및 당위성이 제기된다.”

“교학이 굳건하게 뿌리 내리고 있던 토대(신라 말기)에서 선법이 처음으로 수입되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선교차별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교차별 주장은 당초 교학과 대등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부각되다가 한국선의 전통적인 특징이 되어버렸다.”

“한국선은 조계혜능의 심장에다, 임제의현의 머리에다, 대혜종고의 뼈대를 가진 종풍으로써 구성되어 있다. 도의선사로 계승되는 가지산파의 법맥과 사상과 수행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전승된 조계선법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겠는가? 한국선에서 조계선법은 이미 그 순수성을 상실해버린 까닭에 차라리 그 성격을 원융선이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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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귀 교수가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이 주최한 불교학술대회에서 '한국불교의 선법 수용과 그 변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에 있어서 한국불교’라는 주제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지난 10월 19일 열린 2013년도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불교학술대회에서 ‘한국불교의 선법 수용과 그 변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발표한 동국대 불교학술원 김호귀 교수의 발제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유의 온화한 성격이 반영되다보니 비록 논문의 표현방식은 ‘온순하였으나’ 그 행간에 담긴 내용은 기실 아슬아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선은 편의에 따라 이것저것 가져다가 섞어 만든 ‘짬뽕선’에 다르지 않다는 지적에 학술대회장은 달아올랐다. ‘중국선의 충실한 계승이라는 비판’은 남종선에서 교학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전통을 (한국선이) 그대로 답습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또한 도입 초기에 교학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세웠던 선 우월성 강조를 위한 선교차별 정도가 한국선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따끔한 비판도 관심을 모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더구나 4조 도신의 법을 이은 희양산문의 법랑-신행 선맥을 도외시 하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렵고, 법랑 선맥을 인정할 경우 한국선의 역사는 더 올라가는 만큼, 충분히 고민할 대목이라는 지적은 신선했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선의 특징이나 정체성이랄 게 없다는 지적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김호귀 교수는 논평에 나선 종호 스님(동국대 교수)의 ‘한국불교의 수행법을, 특히 해외에 내놓을 때 어떤 것을 내놓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선은 임제선을 최고로 놓고 교학과 관련이 깊은 법안종을 최하로 간주할 정도로 임제선법을 내놓고 있다”며 “그러나 조계선법의 법맥과 관련된 간화선 수행법의 전승은 사굴산문의 보조지눌 및 그 문하들에 의하여 크게 전개되어 있는 까닭에 고려 후기에 원나라를 통해서 전승된 또 다른 간화선의 전승과도 그 접점은 애매모호하다”고 언급했다. “사실 지눌과 혜심을 통해서 형성된 간화선의 전통과 태고 및 나옹을 통해서 전승된 간화선의 전통은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호귀 교수는 “조계의 피와 임제의 머리와 대혜의 뼈대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는 현재 조계선법의 경우에 그 종조와 법맥과 수행방식의 전승에 대해서는 그 정체성이라는 입장에서는 자칫 아무런 원칙도 없이 비벼진 맛없는 비빔밥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남간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한국선의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이날 발표된 김호귀 교수의 논문은 한국선이 보다 분명한 정체성을 갖기 위해 법맥의 정리가 시급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