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상현 교수의 돌연한 입적에 생전에 형제의 정을 나누었던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의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장마 속에 전해진 임의 운명소식은 비를 핑계 삼아 그 속에 뛰어들어 하염없이 울고만 싶은 심경이었습니다. 임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것은 내겐 차라리 배신이었습니다. 얼마나 살았다고? 한 게 뭐있다고? 앞으로가 참 인생인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이다지도 허무하게 떠나셨단 말입니까?

효당(曉堂, 1904~1979) 스님께 같이 가르침을 받았고, 전갈한 한복과 두루마기를 입고 늦장가를 들 때에도 내 같이 설레었었으며,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취직 했을 때, 또 얼마나 우리 기뻐했던가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동네에서 인생의 조언자로 또 말벗으로 평생을 함께한 두터운 교분이었는데..., 또 정년 후 엔 화랑도의 풍류를 늘그막에나마 맘껏 즐겨보자고 언약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학교를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내게 한 마디 암시도 없이 이렇게 무심히 떠날 수 있단 말입니까? 원망스럽고 분해서 먹먹한 맘으로 먹구름 낀 하늘만 멍하니 바라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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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출판박물관아카데미(SMA)에서 삼국유사 강의를 마치고 수강생들과 기념촬영을 한 김종규 회장과 고 김상현 교수(가운데 줄 중앙).

1960년대 후반 필자가 부산에서 효당 스님을 처음 만날 무렵 그 곳(합천)이 고향인 청년 김상현과도 첫 대면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이 그것은 필자 인생에 있어 큰 인연이었다. 당시 필자가 채 서른도 안 된 나이였으니 김상현 역시 혈기 등등한 청년이었다. 사천 다솔사를 오가며 필자가 스님을 통해 풍류를 배웠다면 청년 김상현은 원효와 화엄사상을 보았을 것이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서는 필자와 김 교수는 고 김충렬 고려대 교수 등과 의기투합해 차선회를 만들기도 했으며, 필자가 설립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불교철학을 지금까지도 담론해왔었다. 90년대 당산동 시대 삼성문화강좌가 김충렬 교수의 주역과 노․장자가 중심이었다면, 박물관이 지금의 구기동으로 이전해 터를 잡은 2000년대 삼성뮤지엄아카데미(SMA)는 김상현 교수의 삼국유사와 원효, 화엄사상이 핵심이었다.

김 교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배인 고매한 인격자로 화엄사상의 전도사였으며 단구의 원효였다.

김 교수님, 이제 세속에서의 이고 다녔던 모진 번뇌 낮게 내려놓으시고 당신이 그토록 정진했던 이상의 가치 불국토에서 효당 스님을 만나 사바세계의 안부 고이 전하시고 원효대사와 조우하여 이내 못다 한 화엄사상의 경지를 갈무리해보시길 삼가 빌어봅니다.

상현아우님! 이승에서의 깊은 인연의 끈 피차 잠시 놓고 부디 영면에 드시게나.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